최근 한 마약사범 재판에서 피고인과 검찰이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를 두고 공방하는 이색장면이 펼쳐졌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이 40대 피고인은 검찰과의 ‘머리카락 공방’에선 승리했지만 정작 자신의 무죄는 입증하지 못했다.
홍모(43)씨는 2013년 6월 자신의 집에서 필로폰 0.1g을 물에 녹인 후 일회용 주사기를 이용, 팔에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8월에 채취한 홍씨의 머리카락에서 ‘모근부터 12㎝ 지점까지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는 내용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결과를 근거로 그의 투약혐의를 인정,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홍씨는 항소심에서 국과수 감정결과의 해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홍씨의 변호인은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1개월에 1㎝씩 자라기 때문에 감정결과는 2013년 8월∼2014년 8월 사이 투약한 증거”일 뿐이라며, 검사가 지목한 범죄시기인 2013년 6월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약은 투약시점부터 머리카락에서 관련 성분이 검출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는 피고인이 마약을 얼마나 오랜 기간 투약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에 검사는 “머리카락이 한 달에 0.8∼1.3㎝가 자라는 만큼, 홍씨의 머리카락이 월 0.8㎝씩 자랐다고 가정했을 때 국과수 감정결과가 증거로서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조휴옥)는 “홍씨의 머리카락이 한 달에 1.3㎝씩 자랐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며 국과수 감정결과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홍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홍씨의 동거인 이모씨가 1심 법정에서 필로폰 구매ㆍ투약 과정을 상세히 진술한 것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증거로 해 홍씨의 투약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홍씨가 이미 2011년 같은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은 점 등을 들어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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