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칸국제영화제는 ‘프랑스영화제’라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프랑스영화가 칸영화제가 열리는 건물 팔레 드 페스티발(축제의 궁전)을 점령했습니다. 프랑스영화 ‘당당하게’로 축제를 시작해 프랑스영화 ‘얼음과 하늘’으로 막을 내립니다. 미국영화 등 해외영화가 개막을 장식하고 프랑스영화가 축제의 문을 닫곤 했던 여느 해와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경쟁부문에 오른 19편의 영화 중 5편이 프랑스영화입니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다툴 경쟁작 5편 중 1편 꼴입니다. 올해 빼어난 작품들이 유난히 많이 나와서 그런 것같지도 않습니다. 일단 ‘겹치기 영화’들이 많습니다. 개막작 ‘당당하게’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엠마누엘 베르코는 경쟁부문에 오른 또 다른 프랑스영화 ‘몬 로이’의 주연배우입니다.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은 이탈리아 영화 ‘이야기들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몬 로이’의 주연입니다. 프랑스영화가 풍성하게 제작돼 수작들이 레드 카펫을 밟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작품들도 그리 빼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몬 로이’와 경쟁부문에 오른 또 다른 프랑스영화 ‘마거리트와 줄리앙’을 관람했는데 평작 수준입니다. 프랑스영화가 아니었으면 과연 경쟁부문에 초청이나 받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환호하나 주요 상을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오히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이나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다른 국가 영화들이 ‘몬 로이’와 ‘마거리트와 줄리앙’보다 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태국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쿨 감독의 ‘빛나는 자들의 묘지’는 영화가 어떻게 순수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발칸 반도의 아픈 현대사를 그려낸 크로아티아영화 ‘높은 태양’도 경쟁부문에 오를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인신매매를 통해 여성 착취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멕시코영화 ‘선택된 자들’도 경쟁부문에 초청됐다고 해도 그리 의문을 던지지 않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요절한 영국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되돌아본 다큐멘터리 ‘에이미’도 경쟁부문에 오를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작품입니다.
칸영화제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영화를 편애합니다. 영화종주국을 자부하는 프랑스가 할리우드의 공세에 맞서 프랑스영화 진흥을 위해 만든 칸영화제이니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프랑스영화 투자배급사들의 로비도 작용했으리라 추측합니다. 칸영화제를 발판으로 국내 흥행 성과를 높이고 해외 시장 개척도 하고 싶은 욕구가 경쟁부문 작품 선정에 영향을 미쳤을 만합니다. 할리우드에 밀리는 프랑스영화의 어려운 현실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범작이 경쟁부문을 차지하고 수작이 다른 부문에 밀리는 모습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칸의 위상도 흔들리지 않을까요. 24일 시상식에서 어떤 상들이 프랑스영화에 돌아갈지도 궁금해지는 영화제 후반입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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