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PD들 기획사·중국行
종편 개국 이후 두번째 엑소더스
김영희 지난달 중국 진출 선언
中 TV 거대 자본 앞세워 인력 흡수
기존 방송사 조직 불신도 한 몫
MBC·KBS 등 지상파 방송사가 ‘한류 역풍’을 맞고 있다. 대중문화 한류 바람이 가장 뜨거운 중국으로 제작 인력 이탈이 심각하다. 대중문화 주도권을 쥐었던 지상파 방송사 PD가 거꾸로 연예기획사로 이직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2011년 종합편성채널 개국 이후 지상파 방송사의 ‘두 번째 엑소더스’가 시작됐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MBC는 PD들의 연이은 중국행으로 비상이 걸렸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느낌표’ ‘나는 가수다’ 등을 히트시킨 스타 PD 김영희 PD가 4월 중국 진출을 선언하며 사직한 데 이어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등을 연출했던 김남호 이병혁 PD도 지난 18일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병혁 PD는 “김 PD와 함께 중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김영희 PD는 현지 전문가들과 회사를 세워 방송 제작에 나선다.
‘위대한 탄생’ 등을 기획했던 이민호 PD도 중국 프로덕션으로 옮기기 위해 최근 MBC를 퇴사했다. 한 달 사이 네 명의 PD가 중국 진출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10년 넘게 외주제작사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김영희 PD의 제안을 받고 예능국 내 다른 PD도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며 “이민호 PD를 따르는 PD들의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 PD들에게 중국은 시장이 광활한 ‘기회의 땅’이다. 중국 회사와 합작해 제작사를 꾸린 뒤 현지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면, 한국에서 프로그램 포맷만 수출할 때보다 최소 5배 이상 수익이 커질 수 있어서다. 제작 교류 차 중국에 다녀 온 KBS 예능 PD는 “중국 위성TV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연간 광고 매출이 3,000억원인데 국내의 10배가 넘는 규모”라며 “광고 수익을 10%만 공유해도 300억원인데 기존 포맷 수출로 얻는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의 인기로 포맷 수출를 통해 ‘한류의 봄’을 맞은 듯했으나 인재 유출이라는 타격을 입게 됐다.
한류 열풍에 연예기획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시장의 주도권이 옮겨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KBS 등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KBS에서 ‘상상플러스’ ‘안녕하세요’ 등을 연출했던 이예지 PD는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SM C&C로 이직을 논의하고 있다. 이 PD는 아이돌 가수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과 온라인 유통에 관심이 크고, SM은 현직 PD를 영입해 소속 연예인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하겠다는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한류의 주도권이 방송사에서 연예기획사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봤다. K팝 아이돌이 해외 시장을 점유하면서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이 떨어지고, 연계기획사 주도의 콘텐츠 수출이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지상파 PD들의 이탈에는 조직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했다는 의견이 적잖다. 특히 MBC는 2012년 파업에 참여한 PD와 기자들을 직무와 무관한 부서로 배치하는 인사 파동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상황. 여기에 방송사가 한류 콘텐츠 제작 및 활용 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PD 이탈의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혜성 MBC노조 홍보국장은 “최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노조가 중국 사업과 관련한 허점 등을 주요 의제로 제기했지만 사측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예능 PD들의 경우 중국 시장은 확대되고 있는데 회사에 몸 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될 게 없어 보이니 직접 하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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