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최근 연임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공통적으로 한 일이 뭘까요. 진보ㆍ보수, 공화ㆍ민주 등 가치관과 정치적 지향이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재선 도전을 선언한 첫 임기 마지막 해에는 외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모두 부쩍 강화했습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턴(CEPRP)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첫 임기 3년째 해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건수가 5건에 불과했지만 4년째로 접어들자, 17건을 WTO로 끌고 갔습니다. 스스로 자유무역의 옹호자로 자임하던 부시 전 대통령도 첫 임기 마지막 해인 2004년 WTO 제소 건수가 첫 해보다 무려 5배나 많았습니다.
뛰어난 화술로 언제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전임자와 같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1기 행정부 3년 차까지는 WTO 제소건수가 연간 1~3건에 불과했으나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도전을 받은 2012년에는 5건의 통상 이슈를 제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중국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큰 차량부품 보조금 지급 문제 해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다가, 재선을 위해 ‘중국 때리기’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2012년 한꺼번에 몰아치는 약삭빠른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미국 대통령이 인권과 평화를 강조하지만, 통상정책을 지극히 정략적으로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행태야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으니, 새삼 나무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대통령의 이 같은 무원칙적 통상정책으로 우리나라가 경제규모 대비 가장 큰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은 28개 국가에 대해 총 103건의 무역분쟁을 일으켰는데, 이 가운데 한국(6건)은 28개국 중 일본과 함께 세 번째로 통상압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안보 분야에서는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이지만, 경제 쪽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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