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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음악,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

입력
2015.05.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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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의미가 뭐지?” 며칠 전 이런 질문을 들었다. 오랜만에 떠오른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추려낸다면 음악은 몇 번째로 사라질까?

음악이 사치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힘들거나 몸이 아파 고된 인생을 살아간다면 음악이라는 게 필요할까? 음악보다는 더 생산적인 일, 몸에 밀접한 일에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연습실에서 혼자 악기를 잡고 쏟아 붓는 시간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음악은 고되다. 음악을 만드는 시간, 연습의 시간이 너무나 길고 고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나 만들어진 음악이라도 세상에 이미 수없이 존재하는 위대한 음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은가 싶기도 했다. 그건 참 슬프고 괴로운 생각이다.

음악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더욱 오랜 시간 방황하게 했다. 그만두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에, 다른걸 해보기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등등, 음악을 접지 못하는 이유는 선명하지 않았지만 아주 커다랗게 뭉뚱그려져 있었다. 공연을 앞둔 날 손가락이 부러졌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한 적도 많다. 언제나 두려운 마음을 달래며 무대에 올랐다. 좋아서 시작한 음악. 그게 삶 전체를 좌지우지 하게 되면서는 즐긴다기보다 숙명처럼 ‘극복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무게가 참 무거웠다.

문득 찾아오는 삶의 위기의 순간 사막으로 여행을 갔었다. 낙타를 타고 마을도 없는 사막 가운데서 야영을 했다. 짐이랄 것도 없는 짐을 풀고 불을 피운다. 불 위에 물을 끓여서 차를 마셨다. 작은 모래 언덕에 앉아 끝없는 곳에서 맞닿아있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눈으로 좇았다. 구경할 것도 없는 그 곳에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 미묘한 색감의 변화, 공기 온도의 변화.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지기 시작한 해는 땅에 닿자 금세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하늘이 붉어졌다. 해를 삼킨 땅, 해를 놓아준 하늘이 엄청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주홍색에서 불색으로, 더욱 타는 듯한 붉은 색으로, 그러다 자줏빛으로, 또 다시 청색으로, 그리고 아주 맑은 청색으로 변하기까지. 하늘은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빛으로 물들었다. 그때까지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살았다. 나에게 그저 ‘하루’였던 시간이 사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에너지로 열렬하게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나가는 걸 지켜본 몇 시간 동안의 뭉클함, 무상함, 뜨거움, 애틋함 같은 감정들은 여전히 마음 속에 각인되어있다.

천장이 없는 곳에서 자 본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낙타들이 바깥 쪽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그 안쪽에서 함께 간 사람들이 쪼르르 눕는다. 침낭 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 놓고 잠이 오길 기다렸다. 투명한 청색의 하늘에 별이 하나 뜬다. 저 멀리 또 한 개. 곁에 누운 동생에게 “저기 별 있다”라고 속삭인다. “저기도, 어! 저기도….” 그러다 둘 다 할 말을 잃는다. 별이 점점 많아 진다. 까만 색의 보드라운 하늘에 별이 가득해졌다. 눈 안으로 쏟아져 내릴 듯. 가득하다.

그 날 밤새 음악을 들었다. 셀 엄두도 나지 않는 별을 보면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다양한 기억을 몰고 왔다. 어린 시절 보고 싶은 사람, 첫사랑의 추억….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많은 장면들이 선명했다.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아니, 떠올리지 못했던 순간들이 사막의 밤과 음악 덕분에 살아나 밤새 행복했다. 그때의 그 시심을 다시 음악으로 만들고 그래서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사막의 밤이 살아난다.

지금 그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은 이렇게 기억을 저장해주고 나를 위로해 주고 있구나. 질문에 희미하게 답을 해본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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