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렬 시집 '아무도 찾아오지…'
모든 뒤처진 것들에는 갱신이 필요하겠지만, 갱신을 업으로 삼는 이는 위험하다. 이 상습적 갱신범들의 내면을 뒤져보면 거기엔 현실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분노, 세상을 들메다치려 호시탐탐 노리는 눈빛, 도저히 만족이라곤 없는 시퍼런 열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력 36년, 고형렬 시인은 여전히 갱신 중이다. 열 번째로 펴낸 시집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창비)에는 부서진 시와 훼손된 언어, 망가진 세계를 복구하려는 모색이 형형하다.
“사회적?개인적 언어가 너무 많이 훼손됐어요. 시의 언어도, 기법도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일탈이 필요해요.”
14일 ‘문학의 집 서울’에서 만난 시인은 줄곧 언어의 회복과 일탈을 이야기했다. 얼핏 시인의 고민으로 들리지만 사회가 언어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는 사회의 회복과 이어진다. “정치?사회적 상황이 우리를 광장으로 나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80년대부터 지속돼온 이런 현상 때문에 우리 문학은 굉장히 지친 상태예요. 도망간 말, 파괴된 말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러기엔 우린 너무 피곤합니다.”
‘도망간 말’은 좁게는 획일화된 언어를, 넓게는 ‘지금 우리에게 없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번 시집의 핵심 정서를 이룬다.
“너와 말이 통하는 순간 아픔이 왔다/통하는 것은 고통이 해소되는 일임에도/너는 하얀 뼈로 말하는가 (…) 내 몸이 불처럼 열려가는 그 말/아, 다시 한번만 그 말을 하고 싶다/그 끊어지지 않는 말/너에게까지 가는 데 번역이 필요 없는 말”(‘통어’ 중)
시 속의 인물들은 서로 말을 나누지만 끝내 통어(通語)에 실패한다. 그 말은 망가진 말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말, 불처럼 우리의 몸을 열어젖히는 말은 어디에 있을까. 시인은 그 말을 찾기 위해 변방으로 향한다. 그가 36년 간 계속해온 일탈의 연장선이다.
“어둠이 내린 교실에서 촛불을 켜면 모두 그 촛불만 쳐다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언어가 딱 이런 모양이에요. 모두 한 곳만 쳐다보고, 하나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정형화되는 건 슬픈 일입니다. 망가진 세계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면 변방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훼손되지 않은 곳은 변방뿐이니까요. 시인은 변방에서 오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모든 사물을 명징하게 비추는 촛불을 불어 꺼버린 뒤 몰려드는 어둠에 집중한다. 그 안에 진짜 언어가 있단다.
“나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나를 당신의 이름 속에 묶으려 하지 말아요/당신의 길이 있으면 당신 길을 가도록 하세요/나를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아요/우리는 너무 오래 서로의 이름을 불렀어요/나의 이름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싶어요” (‘나의 순간 장난감’ 중)
시인의 말은 솔깃하다. 그는 명창이 되고 싶어하는 자에게 “눈을 잃으면 세상에 없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유혹하는 자 같다. 물론 그 결심은 이 세상이 ‘완전한 절망’이라는 현실 인식 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시는 세공된 언어가 아니에요. 현실이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문장이 완벽합니까. 세상 복잡한 것 꺼내 쓰는 게 시죠. 더 좌절하고 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건 풀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방울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것과 같아요. 결국은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이게 내가 시를 쓰는 힘입니다.”
시인의 지치지 않는 갱신의 열정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 세계의 회복도 있을까.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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