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교편을 잡았던 늦깎이 영화감독, 데뷔작이 은퇴작이 될 뻔한 중고 신진 감독. 대중의 눈과 귀에 설기만 두 사람이 한국영화를 대표해 나란히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을 찾았다. 한국영화의 새 살로 돋고 있는 50세 안팎의 두 중년 오승욱(52) 신수원(48) 감독을 칸에서 만났다.
오승욱 감독: 와신상담 15년
15년 만의 메가폰이었다. 오랜만에 촬영현장에 가니 “내가 바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전도연의 지청구가 무서웠다. “절반 정도 찍을 때까지 감독 코스프레(따라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결과는 달콤했다. 데뷔작 ‘킬리만자로’(2000) 이후 메가폰을 놓았던 오승욱 감독은 칸에서 화려한 복귀식을 치르고 있다.
‘무뢰한’은 살인범을 쫓던 형사 재원(김남길)이 범인의 애인 혜경(전도연)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남성영화의 외양에 뜨거운 멜로의 감성을 담았다.
오 감독은 2005년 영화를 머리 속에 처음 그렸다. “투박하고 거칠고 자기밖에 모르는” 한 남자가 여자에게 칼에 찔리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남성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그리려 했는데 여성 심리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고 오 감독은 말했다.
첫 구상에서 칸에 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오 감독은 “세 번째로 찾은 제작사에서 시나리오가 거부당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말 재능이 없구나 생각”했지만 “내가 벌려 놓은 판이니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버텼다”고 오 감독은 말했다.
오 감독은 “취재로 재능 부재를 극복했다”고 했다. “친구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활용했고, (혜경이 일하는) 룸살롱을 제대로 묘사하기 사람들한테 많이 물었다. 여성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뒤늦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등 여성 작가 책도 읽었다.”
작업에 날개를 단 것은 “레전드급 배우 전도연이 캐스팅되면서”다. 오 감독은 “내 마음 속엔 도연느님(전도연)과 유느님(유재석)이 있다”며 “촬영장에서 너무 힘들고 마음 아프면 ‘무한도전’을 보며 이겨냈다”고 회고했다.
15년만의 영화로 칸까지 찾은 기쁨이 클 텐데 그는 “개봉(21일)이 칸영화제보다 더 떨리고 무섭다”고 말했다. “10만을 못 넘겨 본 감독의 비애를 아시냐”며.
신수원 감독: 교사에서 주목 받는 감독으로
신수원 감독은 “아직 얼떨떨하다”고 했다. 2012년 단편 ‘순환선’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됐을 때도 의외였는데 칸이 또 제 작품을 초청하리라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품을 한 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데 새벽에 초청 연락을 받고 잠을 못 잤다”고도 했다.
신 감독은 공립중학교 역사 교사였다.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그는 “교사 생활에 만족하며 살 성격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만두니 막막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모험이고 감독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에서다. 당초 소설을 잘 써볼 생각에 발을 들인 영상원에서 그는 영화에 ‘중독’됐다. “10분짜리를 동료들과 함께 만들고 시사를 하는데 처음으로 마약을 하는 느낌이었다. 교사시절 소설도 쓰고 만화도 그렸는데 그때부터 감독이 되고 싶었던 듯하다.”
신 감독은 2010년 ‘레인보우’로 늦깎이 감독이 됐다. ‘순환선’으로 비평가주간 카날퓔러스상을 받고, 2013년 ‘명왕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상을 수상했다. 국내 대중에 알려지기 전 해외영화제의 인정을 먼저 받았다. 신 감독이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받은 뒤 친구들은 카카오톡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걔는 왜 맨날 주목만 받고 돈은 못 버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주목이 아닌)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을 받았으니까”라며 그는 웃었다.
신 감독의 신작 ‘마돈나’는 한 VIP병동을 배경으로 한국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간호보조사 해림(서영희)이 임신한 채 뇌사상태로 실려온 미나(권소현)의 과거를 좇다가 발견하는 진실이 충격을 안긴다. 신 감독은 “한 여자의 일생이 타인의 이해관계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라며 “사회적 루저인 여자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돈나’의 제작비는 4억원이다. 신 감독은 “최소 10억원 정도로 영화를 만들어야 스태프에 돈도 떳떳하게 줄 텐데 상업영화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의 전진은 계속될 듯하다. 그는 “만족스럽지 못하면 채우려는 욕심이 내 힘이자 즐거움”이라며 “내 영화에 대한 리뷰도 많이 보는데 혹평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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