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김주희] 인생에는 누구나 터닝 포인트가 있게 마련이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대표적인 사례는 트레이드이다. 처음에는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이내 전화위복과 인생역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로 유니폼을 맞바꿔 입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힘차게 시작한 두 명의 선수, 하준호(kt)와 이성민(롯데)이 그렇다.
◇하준호-좌완 파이어볼러에서 3할 타자로
"이상하게 맞아도 안타가 되네요."
kt 하준호(26)가 야구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그는 지난 2일 트레이드로 롯데에서 kt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적이었다. 그는 "처음엔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부산 토박이인 하준호는 경남고를 졸업하고 2008년 신인 지명에서 2차 1라운드 2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좌완 파이어볼러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프로 데뷔 후 2010년까지 통산 25경기에 나와 승리 없이 2패 4홀드 평균자책점 10.57에 머무르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4월에는 왼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그는 소집해제 후 타자 전향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2014 시즌을 앞두고 그는 '이대호(소프트뱅크)의 등번호' 10번까지 물려받으며 타자로 힘차게 출발했지만 지난해 31경기에 나와 타율 0.233, 1홈런 11타점에 머물렀다. 외야 경쟁의 벽은 단단하기만 했다. 이번 시즌도 퓨처스(2군) 리그에서는 8경기에서 타율 0.400을 올리며 매섭게 방망이를 돌렸지만 1군에서는 타율 0.167, 1홈런 1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신생팀 kt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3일 오전 kt에 합류한 그는 이날 NC전부터 3번타자·우익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준호는 "(kt에) 오자마자 (조범현) 감독님께서 어디에 서는 게 좋냐고 하시더라. 우익수가 제일 편하다고 답했는데 그날 바로 경기에 나갔다.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더군다나 내가 3번까지 치지 않나"라며 웃음지었다.
그는 '기회'를 곧바로 잡았다. 새 유니폼을 입고 타율 0.339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팀의 '3번타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14경기에서 7개의 도루까지 성공했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함께 팀을 옮긴 장성우에게 가려있었지만, 숨겨진 진짜 '보석'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하준호는 "한두 경기를 나가면서 롯데에 있을 때보다 경기에 많이 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 때는 주전과 백업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고 틀이 잡혀있지 않았나. 내가 선발로 나갈 일도 없었다"며 "경쟁이기 때문에 한 타석만 못쳐도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설명했다. 자신만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지금은 마음부터 달라졌다. 하준호는 "타격폼을 바꾼 건 없다. 생각만 바뀐 것 같다. 이제는 못 쳐도 '다음 타석에 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롯데 형들도 날 보더니 '여유가 있네'라고 말하시더라"고 말했다.
바뀐 마음 덕에 야구도 잘 된다. 하준호는 "이상하게 맞아도 안타가 된다. 감도 좋고, 잘 풀리는 것도 같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는 "풀타임을 뛰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이어 "이숭용 코치님께서는 타율 3할3푼에 30도루를 하라고 하시더라"고 덧붙였다. 멋쩍게 웃는 그의 표정 속에서 단단한 각오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성민-데뷔 후 2년새 세 번째 유니폼
'새가슴'만 가득하다던 롯데 불펜에 '강심장' 투수가 떴다. 트레이드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오른손 투수 이성민(25)이 '미스터 제로맨'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성민은 19일까지 올 시즌 성적이 19경기에서 2패1홀드 4.19의 평균자책점으로 크게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롯데로 이적한 지난 2일부터는 8경기 1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KBO리그에서 가장 빼어난 불펜 투수 중 한 명이다. 그는 11이닝 동안 7개의 안타를 맞는 동안 무려 18개의 삼진을 잡았고 실점은 아예 없다. 뒷문이 불안한 롯데도 이성민의 가세로 5할 승률을 넘어섰다.
그가 유일하게 흔들린 경기는 지난 3일 대전 한화전이다. 전날 경기가 끝난 직후 트레이드 소식을 접했고 대전으로 이동하자마자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또 팀 사정상 곧장 마운드에도 올라야 했다. 당시 투구 내용은 1⅔이닝 2피안타 2볼넷. 다행히 이어 나온 투수가 호투를 보이며 실점이 없었다.
경북고-영남대 출신의 이성민은 9구단 NC가 2013년 우선지명으로 영입한 투수다. 유망주 계약금 거품이 빠진 가운데서도 3억원이라는 많은 계약금을 받았다. 구단은 시속 140㎞대 중반의 직구와 포크볼로 대학 무대를 평정한 그의 기량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제구와 체력만 보완하면 선발로도 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뒤 10구단 kt의 특별지명 때 이성민은 팀을 옮겨야 했다. 20인 보호 명단에 그가 빠진 것을 확인한 kt가 고민 없이 빠른 선택을 한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원 소속구단인 NC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막 프로 적응을 마쳐 자신감도 생긴 상태였고, 팀도 창단 후 빠르게 가을 야구를 경험하며 강 팀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2013~2014년 2년 간 NC에서 4승6패4홀드, 5.3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또 다시 신생팀에서 뛰어야 하는 얄궂은 운명 앞에 섰다.
그러던 중 대형 트레이드가 터졌다. 이달 초 kt와 롯데가 무려 9명의 선수가 포함된 4대5 트레이드를 공식 발표했다. kt의 미래라고 불리던 박세웅, 롯데가 절대 내줄 수 없다고 몇 년 전부터 강조한 장성우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됐지만, 사실 이종운 롯데 감독은 이성민에 주목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경남고 감독을 역임한 이 감독이기에 당시 경북고의 에이스 이성민을 모를 리 없었다. 이 감독은 "우리 팀의 좋은 선수를 보냈지만, kt의 좋은 선수를 영입했다. 만족한다"고 했다.
이성민은 곧장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세 번째 유니폼과 홈 구장, 그리고 팬들 앞에서 씩씩하게 공을 뿌렸다. 그것도 KBO리그 강타자들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았다. 넥센 김민성 스나이더 유한준, 한화 이용규 김회성 조인성, NC 박민우 나성범, SK 브라운 최정 등이 모두 그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이성민은 10일 마산 NC전 2이닝 무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13일 사직 넥센전 1⅓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15일 수원 kt전에서도 2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5탈삼진 무실점, 19일 사직 KIA전에서는 1이닝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요즘 롯데 팬들이 웃는 이유, 단연 이성민 때문이다.
사진=kt 하준호(왼쪽)-롯데 이성민.
함태수 김주희 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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