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새벽 6시. 수원월드컵경기장 앞엔 200여명의 팬들이 K리그 수원의 유니폼을 구매하기 위해 돗자리와 텐트까지 동원해 줄을 서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루 전인 15일 밤 9시께 시작된 행렬이다. 판매 시작 시간인 오전 9시가 임박하자 대기자는 300명을 넘어섰다. 이날 마련된 418벌의 유니폼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됐다. 수원의 창단 연도인 1995년에서 착안해 1995벌(홈 유니폼 1,500벌, 원정 유니폼 495벌) 한정 제작한 이 유니폼은 지난 8일 1차 판매 때 이미 인기를 확인했다. 판매 시작 3분 만에 준비된 500벌이 모두 팔렸고, 추가로 내놓은 543벌도 10분도 안 돼 품절됐다. 대체 어떤 유니폼이기에 팬들은 이 같은 구매 행렬에 나섰을까?
● 수원의 교훈 ‘추억은 대박이다’
수원이 내놓은 유니폼은 창단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레트로(복고) 유니폼이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사선으로 내려오는 용비늘 무늬를 담은 유니폼은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리는 묘한 힘을 지녔다. 한 수원 팬은 “지금은 수원의 감독과 코치가 된 서정원(45)과 고종수(37)를 비롯해 데니스(38), 산드로(35), 박건하(44) 등 화려했던 초창기 라인업이 다시 경기장에 나타날 것 만 같았다”고 말했다. 구단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감동한 팬들은 선수들의 선물에 또 한 번 감동했다. 16일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클래식 11라운드 홈 경기 때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뛴 선수들은 1-0 승리를 거둔 뒤 옷깃을 세우고 팬들 앞에 섰다. 박건하 현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현역 시절 이 유니폼을 입고 펼쳤던 세리머니를 재현한 것이다. 여기에 수원의 초대 사령탑 김호(71) 감독의 등장까지 더해졌다. 유니폼 구매 열풍에서부터 시작된 이 날은 수원 팬들에겐 완벽한 ‘추억 잔치’가 됐다. (▶관련영상 바로가기)
● 롯데 자이언츠 ‘챔피언의 추억’을 팝니다
‘복고 유니폼 열풍’은 야구계가 한 발 앞섰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챔피언의 추억’을 팔고 있다. 롯데는 15일 사직 NC 다이노스 전에서 시즌 첫 번째 챔피언스데이를 진행했다. 롯데가 지난 200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챔피언스데이는 선수단이 1984년과 1992년 우승 당시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한다. 입장료 역시 그 때의 수준으로, 정상 요금의 50%만 받는다. ‘챔피언 유니폼’은 팬들에게도 인기 아이템이다. 롯데 구단은 자체 쇼핑몰을 통해 흰색 바탕의 홈 유니폼과 푸른색 바탕의 원정 유니폼을 상시 판매하며 하나의 상품으로 정착시켰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 두산 베어스 역시 1982년 당시의 감격을 되새기며 OB 베어스 시절의 올드 유니폼과 모자를 선보여 팬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 한화, ‘전설의 빙그레’를 떠올리며…
올드 팬들에게 빙그레 이글스의 주황색 줄무늬 유니폼은 ‘레전드 군단’의 상징이었다. 빙그레가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던 시간은 1986년 창단 때부터 1993년까지 8년. 그 사이 빙그레에는 투수 이상군 송진우 정민철, 타자 장종훈 이강돈 강석천 등의 선수들이 몸담으며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그러나 1993년 팀명이 한화 이글스로 바뀌면서 줄무늬 유니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니폼이 바뀐 뒤부터 저력도 서서히 사라졌다. 한화는 당시 추억을 간직한 팬들을 위해 2012년 7월‘레전드데이’를 기획해 빙그레가 새겨진 줄무늬 유니폼을 다시 내놨다.
● 연고지 인천의 야구 역사 되새긴 SK
SK 와이번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국야구 100주년과 인천야구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1940년대 스타일의 유니폼을 제작해 발표했다. 1947년 4대도시 대항 전국야구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인천 대표 야구팀 인천군의 유니폼을 재현한 것. 원래 유니폼보다 소매가 길고 흰색이 아닌 베이지색을 띄는 유니폼으로 가슴에는 인천의 영문 표기 ‘INCHUN’을 새겼다. 국내 구단 가운데 처음으로 ‘대안 유니폼’을 의미하는 ‘얼트(Alternate의 줄임말) 유니폼’ 개념을 선보인 SK만의 색다른 시도였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조한울 인턴기자 (한양대 영어영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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