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서울 성수동 한국토요타자동차 성수트레이닝센터 앞에 하이브리드차량(HV)의 대명사 ‘프리우스 4총사’가 모였다. 토요타가 1997년 출시한 프리우스는 전기모터와 엔진을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차량의 효시다.
프리우스 4총사 중 오리지널 프리우스와 차체를 키운 프리우스V는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나머지 2대인 프리우스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PHV)와 보급형인 프리우스C(일본명 아쿠아)는 일본과 북미에서 팔리고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토요타가 3년 전 시작한 ‘하이브리드 스페셜리스트 아카데미’에 참가해 이 4대를 번갈아 운전하며 부산 해운대까지 502㎞를 달렸다. 혼잡한 도심과 한적한 해안, 고속도로와 국도 등 다양한 조건의 도로가 조합된 시승코스였다.
‘4차 4색’의 프리우스
처음 탄 차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리지널 프리우스였다. 2009년 말 출시된 3세대 모델로, 2세대(1,500㏄)에 비해 엔진이 1,800㏄로 커졌다. 지금은 타사의 HV에도 일반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프리우스에 적용된 ‘충전 영역’과 ‘에코 드라이빙 영역’을 구분해 표시한 ‘에코 드라이브 모니터’는 기술 진보의 상징이었다.
전기모터와 가솔린 엔진의 장점을 결합한 프리우스의 주행성능은 기어 노브(knob) 옆의 파워모드 버튼을 누르자 몸이 먼저 느꼈다. 가속 페달의 응답성이 높아지며 가파른 언덕길도 디젤차 부럽지 않은 힘으로 거침없이 올라갔다.
지난달 출시된 프리우스V는 넉넉한 실내공간이 장점이었다. 프리우스보다 길이 16.5㎝, 폭 2.5㎝가 늘어났고, 높이도 9.5㎝ 높아져 운전자의 시야가 탁 트였다. 트렁크 용량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에 맞먹을 정도로 넓은 데다 기본 적용된 파노라마 선루프의 개방감도 상당했다. 가족용 차로는 4총사 중 가장 적합해 보였다.
세번째 시승한 프리우스PHV는 모델명 그대로 플러그 인(외부충전)이 가능한 HV다. 지금은 세계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양산 PHV 첫 테이프 역시 프리우스가 끊었다. 2011년 말 토쿄국제모터쇼를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된 프리우스PHV는 2012년 초부터 판매됐다. 별도의 충전시설 없이 가정용 전기콘센트에서 90분만 충전하면 배터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1회 충전 시 전기모터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26.4㎞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독일 업체들이 내놓는 50㎞에는 미치지 못해 토요타는 완전변경 프리우스PHV 출시를 준비 중이다.
4총사의 막내 프리우스C에 붙은 C는 도시(City)를 뜻한다. 프리우스보다 길이ㆍ높이ㆍ폭이 각각 48.5ㆍ4.6ㆍ5.1㎝씩 작아 이름처럼 혼잡한 도시에서 경제적인 주행과 주차가 가능하다. 다만 실내공간이 좁고 1,600㏄ 엔진인데다 파워모드가 없어 급가속이나 언덕길에서 는 힘이 달렸다. 착한 것은 가격이다. 일본에서는 프리우스의 3분의 2가격인 약 170만엔에 판매 중이다.
연비는 역시…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프리우스의 매력은 단연 연비다. 경제 운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달린 이번 502㎞ 시승에서도 프리우스의 연비는 이름 값을 했다.
오리지널 프리우스로 주행한 성수트레이닝센터에서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 여주휴게소까지 77㎞ 구간 연비는 ℓ당 25㎞. 여주휴게소에서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까지 96㎞는 23.2㎞로 국내 공인 연비 21㎞/ℓ보다 높았다.
프리우스V는 단양휴게소에서 안동과학대(70㎞)까지 ℓ당 20.2㎞, 안동과학대에서 청송미술관(53㎞)까지 22.2㎞를 찍었다. 역시 복합연비 17.9㎞/ℓ를 상회하는 연비였다.
프리우스PHV는 청송미술관에서 경북 영덕군 삼사해상공원(42㎞), 삼사해상공원에서 경주IC 휴게소(69㎞)까지는 각각 17.5㎞/ℓ로 달렸다. 순수 전기차 모드로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가 바닥난 상태라 일본 기준 연비 61㎞/ℓ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차체가 가장 작은 프리우스C는 고속도로 위주로 95㎞를 주행한 연비가 20.2㎞/ℓ로 미국 기준 연비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른 팀이 운전한 구간까지 합쳐 502㎞ 주행을 마친 뒤 체크한 연료 계기판에는 기름이 절반 남아 있었다. 한번 주유로 1,000㎞ 이상을 너끈히 갈 수 있는 셈이다.
토요타 측은 뛰어난 연비의 비결을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디자인으로 설명했다. “곤충스럽다”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프리우스의 외형은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결과물이다. 프리우스의 공기저항계수(Cd)는 0.25로, 세계 자동차 중 최저 수준이다.
하이브리드 고집
1997년 세계 최초의 HV인 프리우스의 등장은 세계 자동차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프리우스는 ‘앞서 가는’이란 라틴어 차명에 걸맞게 환경이 사회 이슈가 되기 전에 출시된 상징적인 차다. 자동차 후발 주자로 저가형 양산차를 만들며 몸집을 키운 토요타는 독보적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과시하며 업계 선두로 나섰다. 프리우스 출시 이후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모델 27개를 세계 90개 지역에서 판매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HV 누적 판매 대수는 766만대에 이른다. 글로벌 업계 5위인 현대ㆍ기아자동차가 불과 4년 전인 2011년 5월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게다가 토요타는 완성차 업체 중 자동차용 배터리를 직접 만드는 거의 유일한 업체다. ‘배터리도 엔진’이란 경영방침에 따라 1980년대부터 전폭적인 투자를 해왔다. 국내 기업들이 휴대폰용 배터리를 만들 때 자회사 PEVE를 통해 이미 1세대 프리우스용 배터리를 생산했을 정도로 기술력을 축적했다.
전기차가 차세대 친환경차의 대세로 떠올랐지만 하이브리드에 대한 토요타의 신념은 여전히 견고하다. 전기차는 근거리 이동용이나 렌터카 등을 뛰어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하이브리드와 한발 더 나아간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로 승부를 걸고 있다. 세계 최고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미쓰비시자동차 등 다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대신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의 연장선에 있는 수소연료전지차(FCV)를 다음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해 말 출시해 화제를 모은 연료전지차 미라이(MIRAI)는 HV처럼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신호탄이다.
업계는 자동차 산업의 변곡점을 2020년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급속히 발전 중인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양산차가 그때쯤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이 살아남을지, 어떤 업체가 왕좌를 차지할 지 곧 결판이 난다. 불과 5년 남았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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