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열정 넘치는 20대 청춘남녀의 은밀한 고민 성(性). 성의식은 개방됐다지만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성이 곧 섹스만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성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맺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고민을 얘기하고 건강하게 토론할 수 없다면, 문제는 곪기 마련. '성년의 날'을 맞아 성년을 갓 넘긴 대학생들의 성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3회에 걸쳐서 조명합니다. ‘너의 곡소리가 아직 들려’는 한 인기프로그램의 성상담 코너를 패러디한 시리즈명 입니다.
<1>性, 21세기에도 여전히 '은밀하게 배워보게'
<2> '몸만 자란 어른'이 왜 위험한가
<3>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요즘 대학생과 '혼전순결'을 논하는 건 고리타분하다. 지난해 대한보건협회지에 실린 '국내 대학생들의 성경험 실태 및 성경험 예측 요인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12년 당시 서울과 충청, 강원 소재의 6개 대학에 재학중인 562명의 남녀 대학생에게 성경험을 물은 결과 65.5%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학생 10명 중 7명 가까이 성관계를 경험한 셈이다.
성의식이 개방되고 성경험이 늘어난 만큼 고민도 쌓이지만 마땅히 털어놓을 곳은 없다. 성에 대해 논하는 19금 TV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작 가족과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부모 세대가 들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20대 초반 대학생 10여명을 직접 만나 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편에서는 대학생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민을 다룬다.
● 인터넷으로 눈뜬 性, 인터넷에 갇혀 있다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단연 '인터넷'. 인터넷의 눈부신 성장 속에 클릭만으로 음란물을 접하는 게 가능해진 세대인 탓이다.
대학생들이 음란물을 처음 접한 후 느끼는 감정은 대동소이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민수(22·가명)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음란물을 처음 접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내게 '이상한 것'에 빠지면 안 된다고 호되게 혼냈고,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음란물은 몰래 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에서부터 성을 꽁꽁 숨기게 만드는 훈육은 성을 '혼자만의 비밀'로 몰아간다. 이는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의 과정조차 부자연스럽게 여기게 만들기도 했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이영훈(23·가명)씨는 2차 성징에 대한 지식이 없어 실수를 한 경험을 들려줬다. 중학교 1학년 때 음모가 생기면서 신체에 변화가 오자 덜컥 겁이 난 이씨는 포털 사이트의 질문코너에 직접 사진을 올려 질문했다. 이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게시물로 신고가 돼 학교로 연락이 왔었다"며 "잘 몰라서 저지른 실수지만 망신을 톡톡히 당했고 이후에도 이 일에 대해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고 말했다.
●어른이 돼도 달라진 건 없어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성인이 돼도 음지에서 얻는 성지식에 의존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유인아(23·가명)씨는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후 생리일이 늦어져 '임신 공포'에 시달렸다. 유씨는 "병원에 갈 용기가 없어 남자친구와 함께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임신과 관련된 글만 찾아보았다"면서 "남자친구는 대학원을 갈 계획이었지만, 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 취직을 먼저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생리예정일이 늦어졌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부족한 성지식은 몸을 소중히 여길 기회를 빼앗았다. 여대생 김하나(22·가명)씨는 캐나다유학생활 내내 남자친구와 성관계 후엔 응급피임약을 복용했다. 김씨는 "아는 게 없으니 남자친구의 말만 믿을 수밖에 없었고, 편의점에서 쉽게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기에 성관계 후엔 으레 응급피임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응급피임약은 어지러움과 두통, 월경 지연, 월경 출혈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자주 복용할 경우 내성이 생겨 전문의들이 권하는 피임법은 아니다. 김씨는 "학창시절에 성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고 하면 '별종' 취급을 받았는데 그때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다면 남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 性, 잘 모르면 일상생활이 불편해
몸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 게 금기시되면서 일상생활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성경험이 빨라지면서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병이나 생식기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관련 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손영민(23·가명)씨는 “사타구니에 생긴 종기 때문에 성병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한참 뒤에 병원을 찾으니 성기를 잘 씻지 않아서 생긴 모낭염이라고 하더라"며 "위생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씻는 게 바른 방법인지는 이제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왜곡된 성의식이 부추긴 대학 내 성범죄도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280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대학당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09년 평균 0.6건에서 2010년 0.8건, 2011년 1.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신고되지 않은 성범죄를 감안하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여대생 최지은(21 ·가명)씨는 “남자 동기들이 모바일 메신저 단체방에서 내 신체를 놓고 성희롱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문제를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며 “성희롱 문제를 상담센터에 얘기해도 해결해줄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성교육, 대학생에게도 필요”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에게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충민 푸른아우성 교육팀장은 "성교육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청소년 성교육은 비교적 활성화됐지만, 현재 대학생들이 청소년이던 시절엔 성교육이 다소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대학생들이 성인이 돼도 인터넷이나 또래를 통해 얻은 성지식을 맹신하는 건 ‘성교육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대학에서는 생식기와 성교에만 초점을 맞춘 성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성 역할, 양성평등, 성차별, 성폭력, 성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서 심도 깊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조한울인턴기자 (한양대 영어영문학과3)
김연수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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