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에서 개발된 이후 수많은 테러단체나 공산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소총이 바로 AK-47이라는 소총입니다. 온라인 FPS(1인칭 슈팅게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총이기도 합니다. 1947년 개발된 AK-47 소총은 1958년 개발된 M-16(개발 당시 이름은 AR-15)과 함께 각각 공산권과 서방세계를 상징하는 무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AK-47 소총과 M-16 소총에 쓰이는 탄창을 국군기무사령부 전ㆍ현직 간부가 레바논에 밀수출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에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될 예정입니다. 전 기무사 소령 이모씨와 현역 기무사 양모 소령, 군수품 판매업자 노모씨 등이 손을 잡고 탄창 3만여개를 자동차 오일 필터로 위장해 레바논의 수입업자에게 밀수출했고 그 대가로 3억6,000만원을 챙긴 혐의입니다. (▶ 기무사 전·현직 간부, 탄창 3만개 밀수출)
이씨의 거래 상대는 레바논의 무기수입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씨는 이 수입업자를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이씨는 2007년 레바논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돼 8개월간 활동을 해 왔습니다. 당시 레바논 군 관계자 또는 당국 관계자의 소개로 무기상을 알게 됐을 거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 무기상은 레바논 정부나 군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총이나 소총에 쓰이는 탄창 등을 전략물자로 지정해 이를 수출하거나 수입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 테러단체 혹은 북한에 흘러 들어갈 가능성은?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한 밀수출 또는 밀수입으로 치부할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설명했듯 AK-47 소총은 공산권과 테러단체의 주력 화기로 쓰이며 ‘반미’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고, 이씨가 건네 준 이 탄창이 실제 테러단체 등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검은 거래로 탄창이 흘러 들어간 레바논은 중동지역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습니다. 1970년대 참혹한 내전이 벌어진 이후 종파 간 갈등과 테러 위험 등이 상존하는 나라입니다. 레바논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종파 분쟁으로 번져 국제적으로 유명한 테러조직의 테러가 빈번합니다. 이씨에게 탄창을 건네 받은 레바논 수입상이 레바논 정부나 정부군의 허가가 없었던 점을 미뤄 밀수출된 AK-47 탄창이 ‘한국(이씨)→레바논(무기상)→테러단체’ 순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역시 AK-47 소총을 주력 총기로 사용합니다. 최근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항공기를 격추할 때 사용하는 무기인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국가정보원이 밝혀 이슈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북한전문매체 자유북한방송은 “처형은 자동소총(AK 소총)으로 이루어졌다”는 북한군 내부소식통의 말을 보도했는데요, 북한 내부소식통이 언급한 AK 소총이 바로 이 AK-47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탄창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 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가능성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레바논에선 한 테러단체가 북한의 기술 지원을 받아 지하터널 등을 건설해 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해 7월 23일 미국 워싱턴DC 지방법원은 2006년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등 공격을 감행했던 이 단체가 북한의 원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북한이 레바논 남부 지역에 지하터널과 벙커, 창고 건설을 지원했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북한과 중동 테러단체 간의 연계를 지적하는 국제적인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지난해 7월 영국 텔레그래프지 역시 동베이루트에 본부를 둔 레바논의 한 무역회사가 또 다른 무장단체와 북한 간의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무기 거래를 알선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의혹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중동의 테러단체와 북한 간의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사실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지대지 로켓포와 로켓 추진 총류탄 등 35톤을 실은 화물 수송기가 태국 방콕에 강제 착륙당해 이들 무기가 압류됐는데 당시 조사 결과 이 무기들은 이란을 거쳐 이들 무장단체에 전달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북한과 중동 무장단체간의 거래였던 거죠. 국내에서 생산한 AK-47 탄창이 레바논을 거쳐 북한으로까지 흘러갔다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이는 대목입니다.
● AK-47 탄창 국내 제조-수출, 왜 가능한 걸까?
혹자는 우리 군에서 쓰는 총이 아닌 AK-47 소총의 탄창이 왜 국내에서 생산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방위사업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AK-47 소총 자체를 만드는 건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수출을 위한 탄창은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정부의 허가를 맡은 제조업체라야 합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실제로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 정부의 허가를 맡고 AK-47 소총 탄창을 수출한 국내 군수업체는 다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처럼 분쟁지역이나 테러단체들이 주둔해 있는 중동 국가에 정식 허가를 내 주지는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 레바논 밀수출된 탄창 흐름 추적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경찰이 이씨로부터 탄창을 건네 받았다는 레바논 현지 수입업자의 신원을 특정하고, 이 물건들의 거래 흐름을 추적해 내는 일이 남았습니다. 일단 경찰은 레바논 현지인이 누구인지 특정한 상태입니다. 2011년 6월쯤 이 레바논 수업업자는 국내에 한차례 들어왔습니다. 경찰은 현직 기무사 간부인 양씨가 당시 레바논 수업업자를 국내 탄창 생산업체에 직접 안내시켰다고 했습니다. 출입국 조사 등을 통해 신원 확인이 된 것이지요. 경찰은 이 인물이 국제적 테러단체 소속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레바논 수입업자를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탄창이 어디로 흘러 갔는지 알 길이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입니다. 경찰은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해 해외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미국 수사기관 쪽에 공조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의 협조 없이는 수입업자의 신원을 확보하거나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밀수출된 탄창의 위치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과연 국내에서 생산된 AK-47 소총의 탄창, 지금 누구의 손에 쥐어있을까요?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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