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순환로에서 중간에 샛길로 빠지면 나오는 불교재단인 동국대 캠퍼스. 퇴근길에 걸어 넘어가다 볼일을 보러 찾은 동국대 건물 벽에 서산대사의 ‘답설’(踏雪)이 붙어 있다. 한번쯤 들어 봤음직한 좋은 말씀이다. ‘눈 덮인 들판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후일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오언절구다. 두 번째 행(不須胡亂行ㆍ불수호란행)이 눈에 박혔다. ‘어지러이 걷는다’는 걸 왜 오랑캐 걸음이라 했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호란하다’가 있다. 한데 뒤섞여 분간하기 어렵다고 돼 있다. 체면도, 절제도, 규율도 없이 마구잡이라는 의미라면 적절해 보인다.
이 시대에 호란행하는 일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국회의 공무원연금 개혁 논쟁은 참 호란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랬더니 나온 결과가 국민연금과의 연계다. 뜬금없지만 논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옮아갔다. 소득대체율 50%를 부칙에 박네 마네 하며 여야가 갈등을 빚고 있다. 논란이 논란을 더하다 보니 뭐가 옳고 어디가 그른지 알 길이 없다. 갈지자 걸음에 어지럽다. 청와대, 대통령까지 끼어들어 과장된 선전전을 벌여 또 다른 논란을 낳았으니 이만저만한 ‘호란행’이 아니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그 기초를 놓는데도 전문가들의 오랜 정지작업이 있었는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못 박고 시작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돌아보기 바란다. 결론에 맞춰 세부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식이 아닌가. 수 천만 국민이 이해당사자다. 수치의 타당성, 여론 수렴은 아니라 할지라도 전문가 의견이라는 절차 문제를 제쳐놓고 국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싶다. 대의정치의 혁신인지, 역사의 퇴행인지 알 수 없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논의기구 출범 정도라면 모를까, 정책 결정의 ABC가 망각됐다. 논의의 절차가 있어야 최초 국민연금이 출범할 때처럼 70%로 하든, 50%로 하든, 그 이하든 결정에 납득이 갈 것이다. 그런데 수치에 덜컥 합의한 여당 대표는 얼마나 현안에 눈이 멀었으면 가늠도 하지 못했을까 싶다. 청와대의 태클에 여당이 멈칫멈칫하자 야당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안을 팽개치고 있다” “신뢰를 보여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번 세월호 협상 때 합의하고 깨고 한 게 몇 차례인가. 기억이 부실한 것인지 낯 간지럽다.
호란행의 이정표를 세운 격이다. 이런 호란행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야당 협조 없이 법 하나 제대로 통과시킬 수 없는 의회 구조가 낳은 소동이라는 얘기다. 여당은 의회주의에 어긋난다고 수시로 폐기를 주장하지만 개인적으론 물리적 충돌을 막겠다고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이 참 좋았다. 여당이 야당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선진화법 시행 이후 여당 대표나 원내대표 모두 야당 존중, 우대를 외쳤다. 어깨에 힘을 빼는 모습이 역력했다. 야당도 여론과 국민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그러니 아무리 논쟁적인 사안일지라도 절충과 조정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적절한 혹은 절묘한 균형점을 어디서 찾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덤이었다. 여야 협상대표가 상대방에게 공치사를 하고, 추켜세우는 것 또한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기는 해도 보기에 좋았다.
별개의 사안을 갖다 붙이는 연계는 야당의 오랜 국회 전략이다. 하자가 드러난 장관 후보자와 결격사유가 없는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를 연계시키기도 했다. 여당이 머릿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시절에는 그 타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사정이 달라진 지금 조자룡 헌 칼 쓰듯이 옛날 방식을 되풀이하면 답이 없다. 혼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사안의 성격도 그러하거니와 절차까지 무시하는 일을 연계 방편으로 삼는 것이 지금 야당의 권리가 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까지 위태롭게 하는 호란행이다. 뒷사람이 볼 이정표를 생각해 선비처럼 걸어가야 한다. 만년 야당 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정진황 기획취재부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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