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약조직 3명 구속기소
북 공작원과 연결 해외판매 계획
"큰돈 벌 수 있다" 말에 포섭돼
황장엽 등 반북인사 암살작전 가담
국내 마약조직이 북한에 들어가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하고,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등 반북 인사들을 암살하려다 당국에 체포됐다. 이들은 북한에 재료를 직접 가져가 필로폰을 만들고, 서울지역 발전소와 가스저장소 위치 등 안보위협 정보까지 북한에 넘겨줬다. 국내 범죄조직과 북한이 서로 협업을 통해 범행을 기획한 새로운 유형의 공안사건에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백재명)는 국가정보원ㆍ경찰청과 공조수사를 통해 방모(68)씨와 김모(62)씨, 황모(56)씨 등 3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국가보안법(목적수행 등)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방씨 등은 중국에서 만난 북한공작원을 통해 1998년 11월부터 2000년 7월까지 두 차례 밀입북해 대남공작 조직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필로폰 70㎏을 제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80~90년대 국내 마약조직 사이에서 ‘기술자’로 통한 방씨는 1997년 마약거래 중 알게 된 이모(사망)씨로부터 필로폰 제조 ‘기술ㆍ원료ㆍ설비’를 대면 북한이 ‘장소’를 제공한다는 협업을 제안 받았다. 이에 방씨는 제조한 필로폰을 북한과 1대 1 비율로 나누기로 합의하고 일당인 김씨, 황씨와 함께 중국과 국내에서 각각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설비(반응로, 냉각기)와 염산에페드린 등 원료를 구입했다. 구입한 물건은 부산-나진항 화물선과 단둥-신의주 국제화물열차를 통해 남파공작원 파견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리원 연락소로 실어 날랐다. 이들은 두 차례 밀입북 과정에서 북한 작전부 전투원들의 경호까지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일당은 제조한 필로폰 70㎏ 중 절반인 35㎏ 상당을 약속대로 넘겨받았지만, 판매에 성공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후 이들은 2008년 3월과 8월,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다시 만나 제조한 필로폰의 해외 판매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이들 일당 중 김씨와 황씨는 2004년 4월~2013년 5월 활동비 4만달러(약 4,300만원)를 받고 북한의 반북 인사 암살 작전에 가담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필로폰 제조로 기대한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자 “반북 인사 암살에 성공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에 포섭됐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들이 관여한 암살 작전에는 1997년 귀순한 황 전 비서와 북한 인권운동가인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등 3명이 포함됐다. 특히 2009~2010년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북한의 황 전 비서 암살 시도에는 일당 중 김씨도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황 전 비서가 거주하던 서울 논현동 안전가옥 주변과 황 전 비서가 정기 출연하던 반북 매체 ‘자유북한방송’ 사옥을 답사하고, 사진촬영한 뒤 북한 공작원 장모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또 장씨에게 서울지역 열병합 발전소와 가스저장소 위치, 2012-2013 한국군 무기연감, 국내 지도책 등 국가안보 관련 자료를 넘겨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북한 측에 ‘김정일 장군의 정치적 신임을 받았다’ ‘조국을 배반하지 않겠다’ 등의 충성맹세문도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마약 조직이 죄책감 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북한과 연계해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다만, 이들이 넘긴 정보가 국가기밀 수준이 아니어서 간첩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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