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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능력주의·갑질공화국의 근원… 용은 개천을 돌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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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능력주의·갑질공화국의 근원… 용은 개천을 돌보지 않는다

입력
2015.05.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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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발행 | 356쪽 | 1만5,000원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발행 | 356쪽 | 1만5,000원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 된다.”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번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자고 주장한다. 이런 성공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며, 이렇게 용이 된 이들은 결국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신분 상승을 이루는 코리안 드림의 토대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천에서 난 용은 정치인 중에도 흔하고 이를 지지한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공정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라고 주장했고,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무상급식을 폐지해 남는 재원을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에 쓰겠다고 했다. 모두 개천에서 나는 용을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성공 모델로 홍보하고 있다.

강 교수는 여기에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는 점을 주목한다. 전 국민이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려 돌진하는 과정에서 개천의 모든 자원, 특히 심리적 자원을 탕진한다는 것이다.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데도 기회가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말하다가 결국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차지하게 된다.

모두가 용을 바라보며 용과 미꾸라지를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가 점점 심화하는 가운데 미꾸라지 사이에서도 차별이 심해진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 한마디로 대변되는 수많은 ‘갑질’이 이를 증명한다. 용이 되지 못한 이들마저 어떻게든 타인을 ‘을’로 만들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것이 ‘갑질 공화국’의 근원이다.

용이 되기 위해 전쟁처럼 싸우는 현실에서 벗어날 출구가 있을까. 저자는 체념이나 포기를 동력 삼아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출세를 체념하고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눈을 돌려 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다. 강 교수는 집단주의적 연대가 아닌 개인주의적 연대, 즉 사회적 약자들끼리 느슨한 연대를 통해 서로에게 힘을 주자고 말한다. 승천을 앙망하는 이들은 결코 납득하지 못할, 그러나 하늘에서 개천으로 눈을 돌린 이들이라면 어쩌면 곱씹어볼 만한 제언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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