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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사회적 콘서트

입력
2015.05.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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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콘서트라고요?” 기획자를 처음 만난 자리, 무슨 소린가 싶어 재차 물었다. 음악회의 아이디어를 빼곡히 정리했다는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종이엔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카프카-물욕에 따른 인간소외, 뭉크-현대인의 고독과 우울, 도스토예프스키-미성년의 사회, 마그리트-꿈과 상상.’ 기획자는 재차 강조했다. “예술이 가지는 본래의 기능을 환기 시키자. 이 시대의 그늘과 결핍을 다독여보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취지야 좋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얼버무렸다. 장엄한 아이디어를 실제 음악회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과 실행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리스트 중 그래도 음악으로 전달하기 만만하다 싶은 주제를 골라 다시 기획자에게 내밀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꿈과 상상.’ 다음 주 금요일에 열릴 음악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큐레이터와 음악가들이 만나 본격적 논의를 했다. 마그리트의 작품세계와 어울릴만한 곡을 물색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말러의 피아노 4중주, 슈만의 피아노 5중주 등이 선정되었고 동시에 창작곡도 의뢰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는 우리의 음악어법으로 전달하고픈 의욕이 활활 불탔기 때문이다. 이번 음악회를 위해 4개의 작품이 새롭게 작곡되었다.

마그리트는 ‘꿈의 열쇠’라는 작품에서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나열했다. 그런데 각각의 그림 아래 퍽 생뚱 맞은 이름들이 붙어 있다. 달걀은 아카시아, 구두는 달, 모자는 눈, 촛불은 천장, 유리컵은 폭풍우, 망치는 디저트. 이 무슨 봉창 뚜드리는 소리인가 갸우뚱거릴 텐데, 바로 이 ‘자다가 봉창’이 마그리트가 의도했던 ‘꿈의 열쇠’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꿈으로 한 발짝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질서부터 낯설게 비틀어야 하니 말이다. 초현실주의를 지향했던 마그리트에게 현실세계의 표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꿈과 상상’이었다. 곰브리치는 이렇게도 말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괴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견을 버리고 자유롭게 공상을 펼치면 예술가의 기묘한 꿈을 같이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음악회를 위해 작곡가는 ‘Dear Rene Magritte’란 피아노 트리오를 새로이 창작했다. 화가의 기묘한 꿈을 오선지의 음표로 풀어내기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작곡가는 연주자에게 구체적 장면을 상상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이 곡에 등장하는 음악적 화자는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는 한 소녀’이다. 소녀는 왈츠의 리듬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악상은 신비하지만 때때로 잔혹동화와 같이 낯설기도 하다. 불협 음정을 머금으면서도 산뜻한 매무새인 듯 변장한 장면은 마그리트 그림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를 연습하기 시작했을 때, 16살 소년의 작품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악보를 익히면서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아직 딱딱히 굳지 않은 소년의 음형은 기특하면서도 애틋했고, 그럼에도 거장의 잠재력이 구비구비 굽이쳐 경외의 마음이 일렁였다. 이 곡을 작곡하기 한해 전, 말러는 동생의 죽음을 목도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시름하던 동생을 위해 소년은 동화책을 읽어주며 간호한 터였다. ‘피아노 4중주’에 드리운 짙은 그늘, 소용돌이쳐 몰아가는 감정의 동요는 동생의 죽음에 사로 잡혀있는 사춘기 소년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에게도 죽음의 경험은 특별했다. 14살 소년은 샹르강에 몸을 던진 어머니의 주검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드레스 자락으로 얼굴이 덮인 채 강물 위에 떠있던 어머니의 이미지는 소년의 인생에 가장 강력한 각인으로 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말러와 마그리트, 두 소년에게 몽상은 상처를 극복하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 음악회도 우리 시대의 그늘과 결핍을 다독이기 위해 ‘꿈과 상상’을 일깨우려 한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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