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과는커녕 유죄 주장 "증거판단에 아쉬움...판결 수용"
강씨, 법원ㆍ검찰 태도에 불만, 연락 끊고 재판에도 안 나와
2007년 재심 청구부터 8년 소요
"진실 밝히는 데 치욕과 고통의 시간,
사법부ㆍ검찰 사죄해야" 목소리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
14일 오전 10시23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 운동권 동료인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부추긴 ‘파렴치범’으로 살아야 했던 강기훈씨에게 마침내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24년을 기다려온 무죄 선고 순간은 비정하리만치 짧았다. 대법원은 그 인고의 시간을 모르는지 툭 던지는듯한 한 마디로 선고를 끝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내놓은 4쪽짜리 판결문에는 뒤늦은 무죄 근거들이 설명돼 있긴 했다. 하지만 강씨 사건에 대한 공안당국의 조작과 법원의 과거 유죄 선고에 대한 지적과 유감 표명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검찰은 더 했다. 지난해 서울고법이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자 불복해 상고했던 검찰은 사과는커녕 아직도 유죄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선고 직후 대검찰청 관계자는 “증거판단에 아쉬움이 있으나, 대법원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찰이 강씨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재심사건에 대해 검찰이 (법정 밖에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날 대법원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서울고법에서 자살방조 혐의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원과 검찰에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었다. 그는 당시 “이 재판은 사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였는데도 재판부가 유감을 표시하지 않아 유감”이라며 “검찰도 당시 기억을 떠올려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최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변호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이날 취재진을 만나 “강씨가 자기 문제로 24년의 세월을 고통과 피해의식으로 보내다 간암에 걸려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며 “3,4일 전 대법원 선고가 예정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끊고 어디 가 있겠다’고 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날 본보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강씨는 없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의 울분을 대신했다. 이날 대법원 1호 법정을 가득 메운 동료들이 선고 이후 밝힌 소감은 지난해 강씨의 소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송 변호사는 “재심청구 이후 오늘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고, 대법원은 (재심개시 결정을 내리기까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 사건을 3년이나 갖고 있었다”고 험난했던 사법여정을 회고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강씨가 간암에 걸렸는데도 검찰은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고, 재심 무죄 선고 이후에는 (상고를 해) 강씨를 증거 조작자로 몰았다”고 비판했다.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판결을 얻어내기까지 우리는 길고 긴 치욕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부당한 국가권력이 모의해 폭력으로 날조하고 조작했을 뿐인데, 우리는 이를 밝혀내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 김기설 열사는 분신을 배후조종 당하고, 유서도 대필 받는 꼭두각시라는 오명으로 두 번 죽임을 당했다”며 “유서 대필자로 지목된 강기훈의 인생은 난도질 당했고, 가족과 친지 그리고 선후배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에 가슴만 졸이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시민모임은 또 “날조와 조작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정중히 사과하고, 이에 가담했던 사법부와 검찰은 반역사적인 거짓말 잔치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하고 “관련자들은 일체의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 국민을 기만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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