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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봄비

입력
2015.05.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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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온다. 안 왔다면 기다렸을 것이다. 봄비는 묘하다. 여름비가 어딘가 집요하고 과한 데가 있다면, 봄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 소리 없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은근히 반갑고 푸근하다. 온기와 냉기 어느 편에도 살짝 걸치는 한편, 그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속하지는 않는, 허랑하고 여유로운 면도 있다. 색깔에 비유하자면 진초록에 살짝 노랑물이 밴 연둣빛이나, 화려하게 피었다가 서서히 지면서 탈색되어가는 꽃들의 마지막 붉고 노란 빛깔 같다고나 할까.

봄비 내리는 소리엔 치명적인 중독성도 있다. 은은한 절박함이나 때 늦은 간절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색에 비유하자면, 절박하다고 무조건 붉고, 간절하다고 무턱대고 새하얀 건 아닌데, 그 모든 ‘조건 없음’과 ‘무턱댐’이 잘 배합되어 연보라 빛 충동 같은 걸 자극한다. 그 자극은 매우 환각적이다. 마구 울음을 도발하지도, 심란하게 마음을 뒤흔들지도 않으나, 오래 보거나 듣고 있으면 홀연히 슬픔의 한 중심이거나 심란의 어느 극점에서 마음이 부산해진다. 그럼에도 원인과 대상은 불분명하다. 흡사 커튼 뒤에 오래 어른대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봄비. 출렁이는 소리와 가느다란 물줄기의 파동. 분명 무언가의 화근일 수 있으나, 그래서 더 취하고픈 긴 밤의 연인 같다고나 하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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