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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리왕산과 내성천

입력
2015.05.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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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평창동계올림픽 분산 개최를 촉구하는 시민모임’의 이름으로 게재된 다급한 광고문을 보았다. 오직 3일간의 스키 활강 경기를 위해 잘려나가는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지키려고 올림픽을 1,000일 앞둔 5월 15일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을 계획으로 모금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간 꾸준히 움직여온 녹색연합의 활동가들은 4월부터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소가 있는 을지로 미래에셋 센터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기사도 읽었다. 이들은 1인 시위를 ‘뭐라도 하기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패배적인 시선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말려야 할 절박한 일이기 때문에 뭐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피켓을 든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왕실에서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되면서 희귀식물이 많고 수종도 다양해 산림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적인 견해를 떠나서 500년 보호림의 고목들을 베는 것이 두렵지 않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돌아올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하긴 전 국토 4대강쯤 거뜬히 헤집어놓은 전적 덕분일까.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세계 2위라는 자연 사랑의 나라에서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건강을 위해 주말마다 산을 찾지만 지역의 수익이라는 명분으로 수만 그루의 수목을 절단하고 도시에서는 편집적으로 녹지 조성에 열을 올리는 아이러니.

내가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캠퍼스의 공간 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는데 졸업하고 우연히 들른 학교에서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순식간에 잘리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충격과 공포감은 대단해서 즉각 ‘천벌’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오싹한 것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미술가들 역시 작업 과정에서 오물을 많이 만들기도 하고 때에 따라 화학물질을 다루며 일회용품의 사용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자연과 환경에 대해 뭐 그리 떳떳할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소심해지곤 한다. 하지만 조그만 경계심과 두려운 마음조차 사라지고 무감해지는 것이야말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최근 두 창작 그룹이 각각 출간한 책들은 이 오만한 인간의 훼손 앞에서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더해진 결과물일 것이다. 청개구리 제작소의 ‘일반자연을 위한 매뉴얼’과 리슨투더시티의 ‘내성천 생태도감’은 각기 다른 장소와 방향에서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유를 가시화한다.

‘일반자연을 위한 매뉴얼’은 자연이 사회간접자본으로 다뤄지는 시대에 ‘자연스러운 자연’을 만들기 위한 기술과 사건들을 다룬다. 청계천, 송도, 용산 등의 장소를 통해 우리와 도시에 자연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기록했다. 이들은 정보화되어 이식되는 자연은 사회적, 생태적 개발의 기획과 다르지 않음을 알고 가리왕산이 처한 운명처럼 불길한 환경적 재앙과 함께 역설적으로 가장 과잉된 녹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결국 ‘일반자연’이란 특성을 잃고 표준화 되는 파생상품으로서의 자연이다.

리슨투더시티는 4대강 개발 현장에서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내성천의 변화를 기록하고 ‘내성천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으로도 활동하며 댐 건설 과정에서 거대한 수익을 취하는 동시에 환경단체를 후원하는 삼성그룹의 이중적인 행적을 비판해왔다. 서문에 쓰여진 발간의 이유는 ‘이 강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박은선이 그린 버들과 멸종위기종 등의 세밀화를 통해 독자들도 그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경이로운 모래강을 누린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도록, 이 책이 과거의 기록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이들은 지율스님, 지역주민들과 함께 삼성물산, 수자원공사, 대한민국을 상대로 영주댐 중지 가처분소송을 했고, 영주댐 해체를 위한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자연과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작은 기회라도 행동의 출구를 찾아보자.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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