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웹툰 '송곳' 작가 최규석
외국계 대형마트 부당해고에 맞서 노조 만드는 평범한 사원들 이야기
단행본 출간… 내달부터 연재 재개
"실제 삶 개선하는 민주주의가 중요"
“노동운동이 멋있어 보이게 만들자, 이게 만화의 목표였습니다. 노동운동의 의미 이런 것보다도 고등학생들 입에서 ‘남자는 역시 노조지’ 같은 말이 나올 수 있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네이버에 연재되며 폭발적 지지를 받은 최규석(38) 작가의 웹툰 ‘송곳’이 창비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2013년 겨울부터 최근까지 연재한 3부를 우선 책으로 묶었고, 내년 봄 5부 완간을 목표로 6월부터 연재를 재개한다.
‘송곳’은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를 배경으로 부당해고에 노조 결성으로 맞서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투쟁과정을 그린 노동만화다. 독자들, 특히 젊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매우 어려운 소재지만, 예리한 현실 인식과 생생한 현장감, 갈등과 연대를 오가는 매력적인 인물관계 등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 듣지” 같은 날카로우면서도 통찰력이 번득이는 명대사들은 연재 기간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최근 영화화를 위한 판권 계약을 맺었고, TV 드라마 제작도 논의 중이다.
“6월항쟁 20주년을 기념해 그린 만화 ‘100도씨’(2009)를 출간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이렇게 무너져가는데 민주화운동 만화 하나 더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어요. 실제 삶의 문제가 개선되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싶었고, 노동문제를 꼭 다뤄봐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 포기하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다가 김경욱 전 이랜드 일반노조위원장 만나면서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했죠.”
김 전 위원장을 모델로 한 푸르미마트 신선식품 청과부문의 이수인 과장은 노조 간부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붉은 머리띠나 투쟁구호, 활달하고 넉살 좋은 성격 등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인물이다. 원리원칙과 대의에 ‘건조하게’ 충실한 이 회의적이고 냉정한 성정의 엘리트는 작가 자신의 성격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현하려는 작가적 의도”의 소산이었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만화들을 주로 그려온 최씨는 ‘송곳’을 그리면서는 젊은 독자들에 특별히 신경 썼다. 네이버로 연재를 옮겨 간 것도 20대 이하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제가 사회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도 운동권 문화가 너무 구리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을 만나면 역시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가담하기 싫다는 거죠.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멋있는 노동운동을 보여주기 위해 활극물까지 생각했었어요. 너무 비사실적일 같아 한국적 상황은 그대로 반영하고, 대신 ‘멋있음’은 주인공 이수인의 얼굴에 다 몰어넣었어요.”(웃음)
‘떼인 임금 받아드림’을 대표문구로 내세운 ‘부진노동상담소’의 소장 구고신은 “너무 위대해지지 맙시다”라며 정의감과 책임감에 짓눌린 이수인의 머리를 식혀주는 연륜의 현장 활동가다. 여주인공 없이 두 남자가 주고받는 우정과 연대를 서사의 주축으로 삼고 있어 ‘브로맨스’의 대표적 콘텐츠로도 많이 언급됐다.
“’송곳’은 선악 대결이 아닙니다. 선한 대의를 좇는다고 해서 다 선한 인간이 아니죠. 그래도 그 대의를 향해 가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고, 멋있는 인간 둘이서 타인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씨는 그간 받은 독자 리뷰 중 고용노동부 공무원의 글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훌륭한 공무원이 돼야지 생각했는데,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 노측은 항상 땡깡 부리고 욕하는 거친 분들이고, 친절하고 스마트한 분들은 늘 사측이었다는 거예요. ‘송곳’을 보고 초심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하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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