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관계 회의에 참석하면 어떤 주제를 다루던지 결론 부분에 가서는 한국 외교의 성토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창피했다. 명색이 외교정책 전문가로서 깊은 반성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도 요즘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국제관계 회의에 참석하려 노력했다. 계속해서 한국 외교의 문제점과 비판을 듣다 보니 전문가로서 크게 세 가지의 반성할 점이 나타났다.
첫째는 무엇보다 깊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설득력의 부족이었다. 성토를 듣다 보면 많은 화살이 외교정책 지도부로 날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일ㆍ남북관계에서 한국 외교는 원칙을 너무 강하게 세우고 밀어붙여 제 발목을 잡은 격인데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역사와 안보의 분리정책, 전략적 유연성을 여러 번 강조했지만 핵심 정책 결정자들이 듣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맞지만 한편으로는 틀리다. 정책 결정자들도 때때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자신들의 판단을 확인하려고도 하고, 때로는 의심이 가거나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판단에 젖어있을 때 누군가가 반대로 얘기하면 당황한다. 이내 경청하기도 하지만 무시하기도, 짜증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깊고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상대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든 결국 설득할 수 있다. 정치적인 요인을 비롯해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전문가로서 끝내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 점은 단지 얘기를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로만 끝낼 일은 아니다.
둘째는 일관성과 정성의 부족이었다. 다수의 외교 전문가들은 언론이 너무 앞서가거나, 국민들을 오해와 편견으로 몰 수 있는 왜곡된 정보를 검증 없이 흘린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런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정책결정자들보다 더 자주 취재를 위해 물어온다. 그들에게 올바른 지식과 한국의 국익을 설명할 기회는 더 많다. 물론 데스크의 요구에 독자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는 ‘섹시한’ 타이틀과 ‘낚시성’ 추측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기사를 가감 없이 받아들인 국민들은 더욱 감정적으로 흥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전문가로서 이러한 상황을 염려하여 더욱 일관성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언론에 설명했어야 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사태로 순직한 김재익 전 경제수석비서관은 퇴근해서도 산더미 같은 자료를 집으로 가져와 연구하고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최고 정책 결정자는 물론 기자들도 설득했다고 한다. 경제 전문기자들이 반대 의견이나 정책에 관해 질문을 하면 하나하나 자세히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준비된 설명에 웬만한 베테랑 경제 전문기자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셋째는 지식과 더불어 행동에서 나오는 전문가의 권위가 부족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대통령도 5년마다 바뀌고, 장관은 더 자주 바뀌며,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는 극단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을 낳기도 한다. 지식과 일관성, 그리고 정성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설득하기에는 속칭 2%가 부족하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중국의 왕후닝(王?寧)이 더욱 크게 보인다. 그는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장쩌민에게 발탁되어 후진타오를 거쳐 현재 시진핑 주석의 최고 정책 브레인이자 당 정치국원 25명 중 한 명이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엄청난 독서량과 뛰어난 아이디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리나 이권에 연연하지 않고 처음 발탁된 1995년부터 당의 중앙정책연구실에서 정책연구에만 몰두하여 ‘무관의 책사’로 불려왔다. 지식과 아이디어에 더해 그의 전문가적 권위와 자세는 다양한 개성의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한국 외교에 제2의 김재익과 한국의 왕후닝이 나와 주길 기도하는 한 외교 전문가로서 그저 반성의 펜을 들 뿐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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