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유네스코 등재 깃발
더 일찍 나서지 못한 것 안타까워
징용자·포로 관련 기록 공개해야"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희생된 한국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겁니다.”
6월 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한 일본 해저탄광 하시마(端島)를 다룬 소설 ‘까마귀’를 낸 소설가 한수산(69)씨는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시마는 최근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세계유산(근대산업유산) 등재를 권고한 일본 메이지 시기 유적 23곳 중 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징용돼 다수 숨진 곳이어서 논란이다.
한 작가는 “등재 권고까지 나온 상황이라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면서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가치 있고 뜻 있는 것을 후세에 남기자는 의미인 만큼 인류 보편의 상식에 비추어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서는 하시마에서 캔 석탄은 인류의 안녕과 번영이 아니라 군수물자에 이용됐는데 이를 숨기고 당시 필요한 모든 물자를 대줬던 낙원처럼 묘사하는 움직임도 있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한 작가는 “일본이 근대화 유산으로 그 유적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거기서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동원돼 노동력으로 활용됐는지도 마땅히 밝혀야 한다”며 “여전히 미공개 상태인 하시마 내 한국인 징용자, 중국인, 미국인 포로 숫자와 관련 기록을 공개하는 것이 일본이 당당해 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이런 논란이 불거질 것을 감안해 해당 유적을 1910년 이전 시기로 한정해 등재 신청했다. 한 작가는 이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한 작가에 따르면 1910년 이전 돌섬에 불과했던 하시마는 1940~50년까지 섬 주변에 옹벽을 쌓아 면적이 4배로 늘어나고 숙소와 학교 등 주거시설도 개축과 증축을 반복해 크게 변모했다. 군함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하시마를 '군함도(軍艦島)'라고 불리게 한 아파트 건축물도 20세기 중반에야 그런 외양을 갖췄다. 섬내 시설을 1910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작가는 한국정부의 사후약방문식 대응에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의 과거사가 담겨있는 곳인데 유네스코 실사에 앞서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내세우는 것은 문제있다’고 왜 더 일찍 나서지 못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1970~80년 일대가 차례로 폐광된 후 ‘폐허관광’이라는 관광상품화가 됐는데 군함도가 1번지였다”며 “2009년 일본에 갔을 때 나가사키에는 이미 ‘세계유산 등재하자’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정부나 언론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그때 이미 “등재 발표가 나면 한국이 다시 들끓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대로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한 작가는 이 일로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서로를 상생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며 걸림돌인 과거사 문제를 “웅덩이에 담긴 쓰레기”에 비유했다. 소각하지 않고 덮었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 한일관계가 악화하면 불거져 나오고, 사이가 좋아 물이 차 있으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 작가는 그러지 않아도 꼬여 있는 한일관계가 이번 일로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하시마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표지판을 세우는 것이 첫걸음”이라면서도 “일본 곳곳의 한국인 징용 위령비가 늘기는커녕 하나씩 사라진다는 소리가 들려 착잡하다”고 말했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당사자든 연구자든 정부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여러 한일 문제들을)영원히 흔들고 있어야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을 향해 외교적 사과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려면 우리 스스로 아픈 역사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연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작가는 하시마의 경우 “당시 한국인 상주인구가 500~600명이었다는 증언이 남아있을 뿐”이라며 “일제시대 때 홋카이도를 비롯한 수많은 탄광에 한국인이 몇 명이나 끌려가 혹사당하다 희생됐는지 여전히 파악하지 않았고, 절 뒷마당 등 나가사키 곳곳에 수없이 많은 한국인 이름의 유골함이 방치돼있어 일본 지인들이 안타깝게 여길 정도”라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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