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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부 눈치보기로 비정규직 외면한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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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부 눈치보기로 비정규직 외면한 인권위

입력
2015.05.1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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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1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선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인권위가 의견을 내놓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가뜩이나 지난달 두 차례 입장 표명이 불발된 터라 어떤 식으로든 인권위가 액션을 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1시간 넘게 이어진 격론에도 비정규직 대책 안건은 또 다시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현장을 지켜보면서 인권위원들이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한다’는 인권위 설립 목적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부 비정규직안은 노동자의 삶과 직결된, 당연히 노동인권의 범주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정부안은 ‘장그래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세상에 나올 때부터 “노동자를 죽이는 법안”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권위의 입을 쳐다봤다.

그러나 일부 인권위원들은 당사자인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논리를 폈다.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하는 의견표명이 소용없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인권위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황당한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더구나 안건에 포함된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부분은 과거에도 인권위가 권고 형태로 입장을 밝혔던 대목이라 인권위의 침묵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이날 공개된 인권위원들의 발언을 보면 애초에 인권위에 기대를 품는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인권위가 왜 끼어드나”(윤남근 위원) “전문가가 아니라 판단이 어렵다”(한태식 위원) 등 인권위원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인권위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안처럼 찬반 양론이 첨예한 사안의 경우 파급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지금의 눈치보기는 책임 방기와 다름 없다. 지난 3월 인권위를 떠난 장명숙 전 상임위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약자를 껴안는 본연의 가치를 되찾아야 인권위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인권 최후 보루’라는 자부심은 권력과 정부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들을 수 있는 자격이다.

채지선 사회부 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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