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샌들 위 형형색색 양말
'삭스 앤 슈즈 콤보' 유행
전용 온라인 편집숍도 등장
짝짝이·스트라이프로 포인트
실패 두렵다면 블랙·누드컬러
양말은 속옷일까, 겉옷일까? 속옷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면, 10cm 통굽의 플랫폼 슈즈 안에 나보란 듯 홀로 튀고 있는 저 양말을 보고 필시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화들짝 놀라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번듯한 정장치마와 하이힐에 양말이라니…, 사회에 불만 있음을 선언하려는 도발이거나, 벗고 나오는 걸 깜빡 잊은 건망증의 소산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양말이 돌아왔다, 빛나는 패션으로
‘차려 입음’이라는 한정적 의미의 패션에서 양말은 속옷과 겉옷 사이의 중간계 같은 존재였다. 벗을 때는 겉옷이라 누구나 주저 없이 벗어 젖히지만-사무실의 김 부장님마저도!-입을 때는 속옷이라 아무거나 고민 없이 집어 신는다.
그러나 양말의 무게중심은 이미 속옷 쪽으로 넘어온 지 오래다. 일명 ‘페이크 삭스’라 불리는 덧신이 결정적 증거다. 발바닥과 발가락만 감싸 신발을 신으면 맨발처럼 보이는 덧신이 전국민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사실이 양말은 신발을 벗지 않는 한 속옷임을 증빙한다. 짤막한 검정 바지 위로 표백한 듯 빛나던 마이클 잭슨의 흰 양말은,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이 드러났다는 의미에서, 찬탄보다는 조롱을 목적으로 두고두고 환기됐던 사례다.
양말이, 그랬던 양말이 돌아왔다. 파격이 사명인 런웨이의 모델들이 하나 둘씩 화려한 디자인의 구두와 샌들 위에 신고 나오기 시작하더니, TV 드라마나 토크쇼, 각종 행사장에서의 연예인들이 패션 테러리스트로 지목될 위험을 감수하며 바통을 이어받았다.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양말의 위력을 감지한 거리의 패셔니스타들이 형형색색의 양말을 신고 도처에 출몰하기까지 유행의 3단계 구성이 이제 완료됐다. 이른바 ‘삭스 앤 슈즈 콤보’다. 거기에 어떤 딱딱한 패션도 캐주얼의 코드로 해석해내는 놈코어의 영향으로 신발은 온통 스니커즈와 슬립온(끈 없는 단화) 일색. 세련됨의 표상이었던 잘 관리된 맨발 대신 ‘양말 입기’를 시작해보기 딱 좋은 분위기다.
“난 더 특이한 양말을 원해”… 편집샵 등장
다양하게 출시된 신상품이 없다면 그것은 유행이 아니다. 신는 양말이 아닌 입는 양말의 유행을 보여주는 것은 양말 전용 온라인 편집샵. 2011년 처음 등장해 우후죽순 늘어났다. 대표적인 곳이 삭스타즈, 탄포포, 삭스하우스 등. 양말 몇 켤레 사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매출은 안정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정 양말이 입소문을 타면서 신규 유입되는 고객도 많고, 그렇게 유입된 고객은 재구매율도 매우 높다. 지난해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신고 나온 스웨덴 브랜드 해피삭스의 제품은 품절 소동을 빚을 정도였다.
양말 편집샵 탄포포의 최동인 실장은 “국내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양말이나 수입 양말들만 판매하고 있는데, 중국 등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양말이라고 하면 동대문 시장에서 떼어다 파는 저가 양말들을 떠올렸지만, 요즘 양말은 일종의 액세서리라고 봐야 해요. 옷은 너나 나나 다 관심이 많기 때문에 개성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죠. 반면 양말은 아직 트렌드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클 거라고 봅니다.”
1만원으로 개성을 뽐내다
패션 양말의 평균 가격은 국내 제품이 5,000~1만원 사이, 해외 제품이 1만~2만원 사이로 양말 치고는 제법 비싼 편이다. 하지만 패션의 확실한 원 포인트로 양말을 선택했다면, 이보다 경제적인 아이템도 없다. 이케아 세대에게는 더더욱! 성조기 문양의 짝짝이 양말,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파랑과 흰색의 3단 스트라이프 양말 등 알록달록한 원색의 양말이 밋밋한 옷차림에 부여하는 생기는 과연 놀랍다.
양말은 목의 길이에 따라 발목 양말인 앵클삭스, 종아리 하단부까지 올라오는 미들삭스, 종아리 상단까지 올라오는 장목 양말 크루삭스, 무릎까지 올라오는 니삭스 등으로 나뉘는데, 양말목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상당 부분 신발의 미학적 기능을 이양 받는다. 이때는 보색을 써 강렬한 대조 효과를 내든, 동일색의 농담 차이로 톤온톤의 효과를 내든, 신발과 양말의 조화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양말이 신발의 일부처럼 보이는 환영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계적 패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를 운영하는 스콧 슈만은 “삭스 앤 슈즈 콤보는 기온 변화가 큰 간절기 실용적이면서도 발랄한 옷차림에 제격”이라며 오랜 패션 터부를 깨는 데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이때 우스꽝스런 패션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일단 무난한 중성적 색깔부터 시도해 보는 게 좋다. 검정과 회색, 남색, 담갈색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아저씨 양말 같은 검정양말이 의외의 놀라운 효과를 낸다. “힐이든 부티든 옥스포드 단화든 블랙슈즈는 블랙 삭스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는 게 사토리얼리스트의 조언. 누드 앤 누드 컬러도 좋다.
양말을 신기로 작정했다면 부끄러워 말고 과감하게 바지를 걷어 올려야 한다. 어중간하게 드러나는 양말은 칠칠치 못한 실수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다리가 짧아 보이지 않으려면 치마도 너무 길지 않은 것이 좋다. 무릎 위 5cm부터 허벅지 중간 길이의 치마가 양말을 신었을 때 가장 세련돼 보인다.
여름엔 얇은 레이스 삭스로 청순하게
양말의 문제는 흘러내린다는 것. 그래서 얇고 탄력성 있는 소재를 골라야 한다. 이때 유용한 것이 스타킹과 양말의 하이브리드 ‘레이스 삭스’다. 앞으로 날이 더워지면 더더욱 요긴하다. 레이스 삭스는 소재 특유의 여성스러움으로 청순미를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통풍이 잘 돼 샌들과 매치하기도 좋다. 레이스도 덥다면 ‘시스루 삭스’가 있다. 발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에 아기자기한 꽃무늬 자수가 장식된 디자인은 특히 플랫슈즈에 잘 어울린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패션에서도 강약조절이 중요하다. 비비안 레그웨어팀 서동진 대리는 “신발과 양말 색을 대비시켜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을 내려면 신발과 양말 중 하나는 옷의 색깔과 비슷하게 맞춰야 하고, 다른 액세서리나 가방은 차분한 색상으로 매치하는 게 균형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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