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0일 러시아에 방문해 무명용사 묘지에 참배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따로 회동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한 축을 이뤄 러시아와 대결하는 상황에서 서방 주요국 지도자들이 모두 러시아행을 거부했지만, 러시아가 마련한 2차 대전 승전 기념 잔치에 자리한 서방 주요국 지도자는 그가 유일했다.
중국과 손잡고 미국의 단극 패권질서에 맞선다는 러시아의 ‘국제정치학’에 손을 들어주지 않되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운 과거 소련군에 사의를 전달하는 예를 갖추려는 기획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신 냉전적 구도를 촉발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의 중재에 앞장서온 유럽 중심국의 외교학도 당연히 배경에 깔렸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고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독-러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러시아를 찾아왔다”면서 “승전 70주년 기념일에 맞춰 전쟁 희생자들에게 참배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총리로서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전쟁의 수백 만 전몰자들에게 사의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고 “당시 소련 국민과 '붉은 군대' 병사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했음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아가 “포위된 옛 레닌그라드에서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간 거주민들, 그리고 고문당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수백 만의 양민들,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에 감금됐던 이들과 전쟁포로들을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유대인 대학살 사례도 언급하며 “이 모든 것은 우리 독일인들에게 항상 경고를 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당시 소련군들이 서구 우방들과 함께 나치로부터 독일을 해방시켰다는 것을 또한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은 전했다.
이날 회담의 주요 의제였던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방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많은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에 달려있다”면서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도자(우크라이나 반군)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 역시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동의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휴전협정이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러시아가 분리주의 반군들에 더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개인적으로도 소통이 잦은 두 지도자는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16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게 악화했던 지난해에는 회담 4차례와 통화 34차례가 있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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