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스포츠였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깨닫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통일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관계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지난 1일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문화ㆍ역사ㆍ스포츠 분야 남북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 사업에는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늘리고 언론인 참여와 동행 취재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낡은 이념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던 남북관계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는 게 당연하다. 정부의 이번 선언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5ㆍ24조치와 북핵 문제 등 각종 현안에 가로막혀 5년 여 미로에 갇혀 있던 남북관계를 마냥 방치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임계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남북교류 허용 방침을 기다렸다는 듯 각 지자체에선 각종 교류사업 아이디어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최문순 강원지사, 김관용 경북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선발주자다. 이들 지자체가 제안한 사업에는 공통적으로 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다.
7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여는 광주광역시와 U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미 북한응원단 참가 및 U대회 성화를 백두산에서 채화해 개성공단을 거쳐 봉송하는 계획을 북측에 제안한 상태다. 북한은 U대회 8개 종목에 선수 75명, 임원 33명 등 총 108명의 선수단을 출전시킬 계획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경평(서울~평양) 축구대회와 10월 문경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체육대회에도 북한의 참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역시 남북 스포츠 교류사업의 으뜸으로는 마라톤을 꼽는 이들이 많다. 남북한 모두에서 마라톤의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신의주 출신 손기정과 남한 삼척의 황영조로 대표되는 ‘족패천하’(足覇天下)의 전통도 공유하고 있다. 남북한의 마라톤 선수들이 휴전선을 가로질러 백두에서 한라까지 혹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레이스를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지난달 12일 북한에서 평양국제마라톤이 열렸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공인한 이 대회는 1981년 시작됐고, 외국인 출전은 지난해부터 허용됐다. 올해는 외국인 650명이 참가했는데 이중 100여 명이 미국인이었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영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등 30개국에서 선수들을 내보냈다.
뉴욕타임스의 스포츠 담당기자는 ‘북한에서의 마라톤, 거리에 이어진 호기심’(At Marathon in North Korea, Curiosity Goes a Long Way)이라는 제하의 방북 취재기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마라톤이 열린 평양의 길거리 풍경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 북한 마라토너들은 외국인 선수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사진을 찍는 등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고, 연도에선 붉은색 상의를 입은 여성들이 테이블에 음료를 올려놓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아파트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북한 체육성의 관리는 “많은 외국인들이 북한을 군사력에만 치중할 뿐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 실상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프코스에 출전한 네덜란드의 한 선수는 젊은 여성이 자신에게 손키스를 보내는 제스처를 취해 깜짝 놀랐다고 했고, 또 다른 선수는 교통정리를 하는 제복 입은 여성이 자신이 지나칠 때 윙크를 하는 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털어놓았다.
북한에 평양마라톤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61년 전통의 경부역전마라톤이 있다. 지난해까지 부산을 출발기점으로 삼았지만 올해는 제주도에서 출발 총성이 울린다. 제주 한라에서 출발한 남북한의 마라토너들이 부산~대구~대전~서울을 거쳐 개성공단과 평양 개선문을 통과해 백두까지 달리길 기대해 본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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