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유럽 양적완화 출구전략
내년에 겹칠 가능성 높아져
IMF·모건스탠리 등 잇단 경고
신흥국 자금 이탈 위기감 고조
한국, 수출 경쟁력 약화 등 악재
다른 나라보다 이탈 폭 커질 수도
세계 경제에 속칭 ‘긴축 발작(테이퍼 탠트럼ㆍTaper tantrum)’ 경보음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더해 예상보다 빨리 유럽, 일본 등 다른 선진국까지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이는 ‘동시 긴축’이 진행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으로 지탱해온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신흥국 시장이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에 미국과 유럽, 일본이 동시에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행하면서 ‘3중 긴축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유럽 및 일본이 올 들어 보여준 경기 회복세를 이어간다면 내년 하반기 테이퍼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한편, 미국은 오는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신호탄으로 내년 상반기 양적완화로 거둬들인 채권 보유량을 줄이며 본격 긴축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 나라의 동시다발적 긴축이 현실화될 경우 신흥국에 미치는 여파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전 의장의 양적완화 종료 시사 발언으로 촉발된 2013년 1차 긴축 발작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취약 5개국으로 불렸던 인도,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공의 경우 버냉키 전 의장 발언이 있었던 5월부터 그 해 연말까지 수십억달러 규모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최고 30% 가까이 떨어지는 등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사태를 겪었다.
앞서 지난달 17일엔 호세 비날 국제통화기금(IMF) 통화ㆍ자본 부문 이사가 ‘슈퍼 긴축 발작’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2년 전 ‘원조’ 긴축 발작을 뛰어넘는 경제적 충격을 경고했다. 비날 이사가 충격의 진원으로 지목한 곳은 채권시장. 미국이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1%포인트 급등(채권값 급락)할 수 있는데, 달러 표시 채권 발행량을 늘려온 신흥국 기업의 부채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달러화를 비롯한 주요 통화 표시로 발행된 신흥국 회사채 규모는 1조5,000억달러 수준으로, 2009년 이래 두 배 늘어난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아직까지 “양적완화 축소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준 역시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며 연착륙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불안은 불식되지 않는 분위기다. 모건스탠리 보고서 작성자인 마노즈 프라드한 애널리스트는 “긴축 발작은 테이퍼링의 실제 시행과 무관하게 시장의 기대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며 신흥국 자금 이탈이 연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독일과 미국 시장에서 촉발된 채권 금리 급등을 지적하며 “시장이 이미 반응하기 시작했다”(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분석도 일각에선 나온다. 한요섭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독일 국채금리 상승, 유로화 강세, 유가 반등이 맞물리면서 당분간 전세계적인 유로 캐리 트레이드(유로화를 저리로 빌려 해외투자) 자금 이탈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신흥국 그룹 중 펀더멘털이 양호하다지만 우리나라 역시 ‘긴축 발작’ 사정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박병욱 SK증권 차장은 “엔저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 등 한국만의 특수 상황이 더해지면서 테이퍼링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폭이 여타 신흥국에 비해 커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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