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서 인종차별적 난민선 칼럼
유엔 인권최고대표 즉각 제재 요구
필자는 "누군가 용감해져야" 주장
"지하디스트 50만명 부메랑 우려"
극우 영국독립당 공포 부추기고
난민선 구조 주도 伊는 예산 깍아
EU 정상들 공동 대책 나섰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놓고 골머리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에게 관들을 보여달라. 나에게 물에 떠다니는 시신들을 보여달라. 바이올린을 켜고 깡마른 슬퍼 보이는 사람들을 보여달라. 나는 여전히 상관하지 않는다’
지난달 17일 영국 타블로이드지 ‘더 선’지에 실린 칼럼니스트 케이티 홉킨스의 칼럼 도입 부분이다. ‘난민선을 구하라고? 나는 포함(砲艦)들이 불법 난민들을 막는데 사용되길 바란다’는 제목의 칼럼은 ‘이러한 이민자들이 마치 바퀴벌레와도 같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인종차별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칼럼은 목숨을 걸고 유럽행에 나선 난민들을 ‘바퀴벌레’로 비유하고 영국에 온 이들을 각종 혜택을 갉아먹는 존재로 묘사했다. 몇몇 영국 마을들이 ‘떼로 몰려온 이민자와 망명자들의 괴롭힘으로 상처가 곪아터졌다’고도 썼다.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서는 포함을 사용하고, ‘난민선과 비슷한 보트 바닥에 구멍을 몇 개 뚫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을 쏟아낸 칼럼에 대해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즉각 반발하고 영국 관계기관에 제지를 촉구했다.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것들이 이민자에 대한 정치적 편견을 부추기며 비방의 악순환을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칼럼이 마치 1994년 르완다 대학살로 이어진 대중선동을 부추긴 혐의로 국제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르완다 신문과 라디오 방송들의 언어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제이드 대표는 또한 “영국 타블로이드 언론들에 의해 이뤄지는 이민자와 망명자에 대한 언어 폭행의 악순환은 너무나 오랫동안 법의 도전 받지 않은 채로 이어지고 있다”며 영국 관계기관에 타블로이드 언론들의 증오 선동 문제를 밀접하게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과거 나치의 미디어들은 지도부가 제거하고 싶은 사람들을 쥐와 바퀴벌레로 묘사해왔다, 이러한 언어 유형은 특히나 전국적 신문에는 결코 실릴 수 없으며 칼럼 출판을 허용한 더 선지의 편집자들 역시 필자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더 선지의 칼럼은 지난 20여년 간 영국 타블로이드지들이 드러냈던 반 이민자 정서의 한 부분일 뿐이다. 망명자들과 이민자들은 강간, 살인, 강도 등 모든 생각할 수 있는 범죄들과 연루돼 자극적으로 신문지상에 등장해 왔다. 제이드 대표는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민자의 악마화가 진행돼 오고 있으나, 이는 대개 극단적인 소수 정치정당이나 선동가들에 의해 행해질 뿐 언론매체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며 영국 타블로이드지들의 심각한 반 이민자 정서를 지적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해당 칼럼을 작성한 홉킨스는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할 만큼 용감해져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선지 역시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난민 구조 반대” 영국독립당, 총선 388만표 득표
영국에서 널리 읽히는 더 선에 게재된 명백히 인종차별적 칼럼은 영국의 이민자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였다. 지난 7일 영국 총선에서 극우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은 나이젤 파라지 당수가 낙선하는 등 후보 1명만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선거구에서 득표 1위만 당선되는 소선구제를 채택하기 때문이지 UKIP가 전국적으로 얻은 득표수는 388만표로, 총 투표수의 12.6%를 차지했다. 이는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에 이은 3위다. 낙선 후 당수직 사임을 발표한 파라지 전 당수는 선거 운동이 막바지로 향할 때 불거진 지중해 난민 위기에 대해 거침없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유럽연합(EU)의 난민 구조 활동 참여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해 파란을 일으켰던 파라지 전 당수는 만약 EU가 지중해 난민 위기에 공동 대응을 추진한다면, 아프리카의 ‘수백만의 파도’가 영국으로 들어와 막대한 예산이 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EU의 난민 구조 활동에 영국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난민을 받아들이려면 기독교인만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영어를 못하는 동유럽 이민자들보다는 인도나 호주 이민자들이 더 낫다는 식의 인종차별 발언을 방송 인터뷰에서 했다. UKIP는 지중해 구조작전으로 ‘지하디스트’가 될 수 있는 50만명의 이슬람 교도들이 영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공포를 부추겼다.
반이민자 정서가 지중해 난민 구조 지연시켜
이러한 인종차별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는 정당이 전국적인 지지를 얻는 상황에서 난민 구조 활동에 대한 유럽 각국의 태도는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해군 주도로 이뤄졌던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 작전은 1년 동안 이뤄지다 지난해 10월 종료됐다. 2013년 10월 이탈리아령 람페두사섬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난민선이 침몰하면서 360명이 사망하자 나온 대책의 일환이었다. 매달 투입되는 예산만 900만유로(약 110억원)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시달리는 이탈리아 정부가 마레 노스트룸에 연 1억1,400만유로(약 1,400억원)을 지출하면서 국내 불만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마레 노스트룸이 더 많은 난민이 국경을 넘도록 부추기고 있다”며 “이들은 구조작전으로 인해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반대여론이 비등하자 지중해 난민 구조작전은 EU의 국경관리기관 ‘프론텍스’가 맡는 ‘트리톤 패트롤’로 대체돼 예산도 매달 300만유로(약 40억원)로 3분의 1 토 막났고 수색 반경도 이탈리아 영해 30마일 이내로 축소됐다. 그리고 올해 들어 4개월 동안 지중해를 건너던 난민 1,600여명이 각종 사고로 사망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유럽 국가 정부들이 지중해의 위기에 방관하면서 올해 들어 난민과 이주민 사망자가 전년대비 5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로렌스 졸레스 UNHCR 남부유럽대표는 영국과 이탈리아 등 선거를 앞둔 유럽 정치인들이 자국의 반 이민자 정서에 편승했다고 비판했다. 가우리 반 굴릭 UNHCR 부국장은 “EU는 구조작전이 난민들의 밀입국을 더 부추긴다며 수색 구조 작전의 지원 규모를 축소했지만 지중해의 현실은 오히려 유럽에 가고자 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수가 더 증가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UNHCR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유럽으로 망명한 시리아 인들은 12만명에 달하지만, 이웃나라인 요르단이나 터키로 도피한 300만명에 비하면 작은 훨씬 적은 숫자다.
뒤늦은 EU 난민 구조 방안… 근본 해결은 난망
1,600여명 사망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고서야 유럽 각국 정상들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EU 28개 회원국 외무장관?내무장관 회의에 이어 23일에는 각국 정상들의 회의가 열렸다. 긴급하게 통과된 대책은 현행 난민 구조작전 트리톤에 대한 자금 지원 확대와 시행범위 확대. 현재 매달 300만유로씩 이뤄지는 자금 지원을 지난해 마레 노스트룸 수준까지 세 배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이탈리아 혼자 지던 부담을 이제야 겨우 EU 국가들이 나누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난민 구조와 지중해 순찰을 위해 영국이 군함 3척과 헬기,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군함 2척씩 제공키로 약속하는 등 장비 파견이 이뤄질 예정이다. 더불어 EU 회원국들의 군대가 밀입국업자 단속과 이들 소유의 난민선 파괴 등의 작전 수행을 준비하기로 하고 난민 유입의 주요 경로인 리비아에 군대를 파병하는 유엔 결의안 추진을 합의했다. EU 합의가 도출된 후 지난 4일 난민 구조 활동에 투입된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스 당국이 지중해에서 이틀간 무려 5,800명이 넘는 난민을 구조하는 기록을 세웠다.
난민 수색 구조 작업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으나 난민 거취 문제와 아프리카의 혼란에 직접 유럽이 개입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EU는 트리톤의 활동범위 확대에 대해서도 여전히 소극적이다. 트리톤은 이전과 같이 유럽국가 해안으로부터 30해리 안에서만 순찰 업무를 수행하고, 유럽에 도착한 난민에게 제공하는 재이주 거처도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5,000명분만 제공하기로 했다.
EU 차원의 군사 작전은 러시아가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발표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군사행동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난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8일 인구와 경제력에 걸맞게 유럽 각국이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은 20만 2,815명, 스웨덴 8만 1,325명, 이탈리아 6만 4,625명, 프랑스 6만4,310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그 동안 외면 되어왔던 지중해 난민 위기는 수천명의 생명을 지중해에 수장시키고 나서야 겨우 유럽 국가들을 회의석상에 앉히고 본론에 들어간 셈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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