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제주 4·3사건과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통해 통한의 역사를 그린 '비념', 한국 구로공단과 캄보디아 봉제노동자를 통해 아시아 여성노동 문제를 다룬 '위로공단'.
임흥순의 이들 장편 영화는 하나의 사람 또는 하나의 사건으로 출발해 사회와 역사 전체의 흐름을 그리면서 사회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유의미한 성찰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위로공단'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의 영예를 안기 전 임흥순이라는 영화감독 겸 미술 작가에게 많은 이의 시선을 모아준 계기가 된 영화는 전작 '비념'이다.
2013년 4월 3일 국내 개봉한 '비념'은 1948년의 제주 4·3사건을 다루면서 제주 강정마을 문제를 함께 엮어냈으며 제주의 역사를 현대미술로서 재현한 영화다.
당시 임흥순은 제주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4·3은 제주의 과거이고 강정마을은 제주의 현재"라며 "정치적 이념 이전에 우리가 가진 작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나의 사건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 더 큰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현재 진행형'으로 담아낸다는 점은 임흥순 특유의 비범한 재능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념'은 제주 애월읍에 사는 강상희 할머니와 4·3사건으로 희생된 할머니의 남편 김봉수의 삶으로 제주인의 깊은 슬픔, 나아가 역사의 아픔을 담아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에 기고한 글에서 "부분의 이야기를 전체의 이야기로, 하나의 사건을 큰 역사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하는 임흥순의 연출력은 그가 얼마나 역사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그 관념의 직조 또한 대단한 수위인지 짐작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임흥순에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의 은사자상을 안긴 '위로공단'에서도 그런 그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
40년 넘게 봉제공장에서 일한 어머니와 백화점 매장에서 일한 여동생의 삶이라는 주변의 이야기에서 착안해 아시아 여성노동이라는 역사의 한 장을 다룬 영화다.
과거 한국의 구로공단과 현재의 캄보디아 봉제노동 현장을 잇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실존 인물 인터뷰와 실험적 이미지를 통해 보편적 현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돼 상영됐으며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또한 '위로공단'은 내달 4일 개막하는 제3회 무주산골영화제의 한국 장편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
정확한 극장 개봉일은 잡히지 않았으나 제작사 반달은 베네치아 상영 후 연내 국내 개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념'은 개봉 당시 전국 22개관에 걸렸으나 2천300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역시 제주 4·3사건을 그린 오멸 감독의 극영화 '지슬'이 14만4천명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화와 미술을 겹쳐놓는 임흥순의 실험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한 셈이다.
그러나 '비념'과 마찬가지로 '위로공단'은 개봉 자체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주는 영화만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다.
오동진 평론가는 "'위로공단'이 대중에게 공개되면 잔잔하지만 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많은 대중이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래 보여지고 회자되고 음미될 것"이라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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