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경제학자, 꼼꼼한 사례 제시
복지사회는 인류가 창조한
가장 효율 높은 발전모델
저생존원가형 모델이 모두에 유익
우리 사회의 지향이 복지국가여야 한다는 것에 정색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으로 시작하는 조건절이 주렁주렁 뒤에 붙을 뿐이다. 복지국가가 좋기야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가 초래될 것이고, 무시무시한 증세가 불가피하며, 자유경쟁이라는 시장자본주의의 위대한 유산은 도덕적 해이로 붕괴될 것이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들. 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들이 메아리 되어 복지국가라는 당위는 매번 억압과 좌절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나라가 좀 더 부자가 되면, 경제가 불황을 벗어나면, 재정적자가 안정적으로 해소되면 그때…. ‘그때’는 과연 올까?
중국 경제학자 가오롄쿠이의 ‘복지사회와 그 적들’은 나라가 가난하고 경제가 어렵고 재정이 불충분할 때야말로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꾀해야 하는 바로 ‘그때’임을 주장하는 도발적이고도 설득력 넘치는 책이다. 홍콩 루이쿠연구원 부원장이자 상하이자오퉁대 해외교육학원 고문인 저자는 평형경제학 원리와 신복지 사회이론 등을 발표한, 중국어권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경제학자다. 복지국가에 대한 훈수를 중국 학자에게 듣는 것이 어쩐지 좀 찜찜할 수도 있겠으나, 책은 ‘복지의 성지’ 북유럽 5개국부터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싱가포르의 복지제도에 이르기까지 복지 문제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호방하게 집대성했다. 경제규모 세계 2위에 전 세계 사치품 시장의 블랙홀이건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80위에 그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한 중국의 현실이 도리어 우리에게 보다 적실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책은 복지사회가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꼼꼼한 사례 입증을 통해 주장을 전개하는 저자의 서술방식은 역사와 지리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복지가 지출이 아닌 투자임을 각인시킨다. 최근 복지반대론자들의 주요 논거로 자주 언급되는 그리스 부채 위기를 보자. 도대체 얼마나 복지가 좋길래 국가부도의 위기에까지 이른 것일까. 그리스 사회복지 지출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6%로 유럽연합 평균 26.9%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1년 그리스의 실업률은 17.6%에 달했지만, 실업급여 지출은 GDP의 0.1%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했을까? 바로 2004년 개최한 아테네 올림픽이다. 미국 9ㆍ11 테러 후 처음, 그것도 인구 1,100만의 작은 나라에서 열린 이 올림픽은 안전분야에 엄청난 돈-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6배-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올림픽의 총지출은 그리스 재정 총수입 200억유로와 맞먹는 160억유로에 달했다. 서구 주류언론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에도 수시로 등장했던 엄청난 복지혜택을 받는 그리스인은 전체 노동인구의 10%인 공무원들로, 이들은 아노미가 창궐한 극단적 다당제의 그리스 정치풍토에서 유일하게 투표율이 높은, 그래서 과도한 대우를 관철해낼 수 있는 표밭으로서의 힘을 가진 예외적 집단이다.
복지사회에 대한 반대는 주로 효율성의 측면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저자는 “복지사회는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해낸 가장 효율이 높은 발전모델”이라고 반박한다. 북유럽 5개국-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은 복지의 고효율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들이다. 이곳에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사회보장 체계가 명실상부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이 나라 국민들이라고 해서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게 되는 임금 의존적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의해 기본적 ‘먹고사니즘’이 해결되기 때문에 단지 즐거움이나 호기심 때문에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는 동력이 생겨나고, 그 덕분에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각 분야의 진보를 이끌고 있다. 이케아와 H&M, 일렉트로룩스 등 세계적 다국적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들이 바로 이 나라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의 수요 창출 능력이다. 재분배라는 소득 조정 절차를 거친 복지국가는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이들이 국내 수요를 최대한 끌어올림으로써 생산-소비의 선순환을 형성한다. 부자들이라고 하루에 밥을 열 끼 먹는 것도 아니고, 새 옷을 열 벌씩 갈아입는 것도 아니다. 부자들의 소비능력은 결코 부의 창출 능력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는 많은 세수를 이용해 높은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엄청난 일자리를 창출한다. 노르웨이는 1962~1992년 공공부문이 흡수한 취업 인구가 전체 신규 취업 인구의 85%였으며, 스웨덴은 공공부문 취업 기회 중 75%를 여성에게 할당해 성인 여성의 노동참여율을 84%까지 끌어올렸다.
스웨덴 성인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60% 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도 조세저항이 불끈 솟건만, 정작 당사자들은 높은 세율이 초래한 흥미로운 순작용을 언급한다. 직업의 차이나 소득의 높고 낮음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중시해 직업을 고르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스웨덴 총리의 연봉은 일반 노동자의 두 배에 불과하고, 장관과 환경 미화원이 퇴직 후 받는 최저보장연금은 심지어 동일하다. 스웨덴 최고 연봉자 100명의 소득은 세금을 떼고 나면 보통 노동자들보다 고작 5배 많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다. 그래서 북유럽국가들이나 독일 정도의 부가 축적된 후에라야 저런 파격적 복지정책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유럽의 오지였던 가난한 후진국일 때 복지국가의 기반을 형성함으로써 여러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뜬히 헤쳐나갈 수 있었다. 독일에 복지국가의 개념을 정립한 이는 다름 아닌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
저자는 복지국가에도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복지국가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생존에 비용이 덜 드는 저생존원가형 모델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이 결함마저도 보완할 수 있다. 생필품에는 세금을 안 매기고 향유품에는 적당히, 사치품에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모두에게 유익한 저생존원가형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그 전에 물론 해야 할 일이 있다. 복지사회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끊임없이 유포하는, 복지국가로부터 더 얻을 것이 없는 유일한 소수 집단의 헛소리를 타파하는 것이다. 고위 엘리트와 언론인, 법조인, 전문 경영인, 바로 이 4대 고위층이 복지사회의 적들이다. 이 책의 요지는 간추리면 이렇다. “적들은 들으라. 복지국가는 언제나 승리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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