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해양수산부가 다시 출범한 본연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인 해양수산업의 재도약과 활성화를 위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는 약속을 드리고자 합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크루즈산업 활성화 및 마리나산업 육성방안’ 브리핑 도중 한 말입니다. 올 초 밝혔던 주요 정책들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설명하는 자리였던 만큼, 앞으로 업무 성과로 평가 받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발언을 듣고서 한동안 개운치 않은 느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세월호 후속조치 관련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의견을 전향적으로 수용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을 마련했고 어제 국무회의에서 심의ㆍ의결했습니다. 특조위는 참사의 진상규명을 실시할 엄중한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렵게 시행령이 마련된 만큼 업무를 조속히 정상화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서로 옥신각신하던 시행령 안이 최종 결정된 만큼 특조위 측이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인정하고 서둘러 진상조사에 착수하라는 촉구인 셈인데요. 특히 ‘엄중한 책무’라는 표현은 그간 특조위가 요구해온 시행령 폐기 주장이 ‘조속한’ 진상규명에 장애로 작용했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해수부의 이 같은 강경 발언은 한 주 전인 지난달 29일에도 나왔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 발표에 나선 김영석 차관은 브리핑 내내 특조위의 불통을 지적했습니다. 해수부는 3월 말 정부 입법예고안을 내놓은 뒤 특조위 측에 수 차례 협의 요청을 했지만, 이를 거부한 채 언론을 통해 정부 비판에 나서거나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벌였다는 겁니다. 그는 “특별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흘러 이제는 더 이상 시행령 제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며 “특조위 주장대로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경우 조직구성은 지체되고 더 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시행령 제정이 늦어진 게 특조위 때문일까요? 사실관계를 정확히 보려면 약 한달 반 전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조위는 3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우리의 시행령안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앞선 2월17일 내놓은 특조위 안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법예고를 미루고 심지어 조직과 예산을 축소하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들리자 구호요청을 보냈던 겁니다.
결국 3월 말 나온 정부의 입법예고 안은 예상대로 ▦조직이 축소(1관3국→1국2과)되고 ▦소위원회의 해당과 지휘ㆍ감독기능이 사라진 채 ▦진상규명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실장 고위공무원)이 신설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이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한 달 넘게 기다리다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받아 든 특조위로서는 일정 지연을 감수하고라도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입법예고안 폐기 및 특조위안 수용’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특조위가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해수부의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특조위는 자체 시행령안을 내놓은 뒤 몇 차례 담당 해수부 관계자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음에도 막상 정부 입법예고 안이 딴판으로 나오자 더 이상 신뢰를 갖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세월호 인양을 두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다수 유가족의 뜻과 배치된 희생자 배ㆍ보상계획(4월1일)을 내놓는 등 자충수를 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한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를 알맹이 없는 대화 테이블로 불러냈다”며 “대신 ‘정부의 수정안을 제시하면 그걸 갖고 논의하자’고 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수정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수정안은 어떤가요. 정부는 특조위의 10가지 요구안 중 7개를 받아들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수용하지 않은 ▦3개 소위원회(진상규명ㆍ안전사회ㆍ지원)의 소관 ‘국’ 지휘감독권한 삭제 철회 ▦기획조정실장(‘행정지원실장’ 변경) 폐지 등 나머지 사안들은 특조위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지켜주는 것들입니다. 특조위와 유가족 입장에선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월호 1주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유가족들은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황에서 특조위는 (시행령)폐기 주장이 기술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보고 시행령 개정운동에 나설 것임을 밝혔습니다. 세월호 인양은 이달 내 구난업체 선정을 위한 제안서 접수가 시작될 예정이지만 과연 특조위 활동기간 안에 인양이 이뤄져 실질적인 조사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피해자 배ㆍ보상 역시 여전이 상당수 유가족이 미루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수습의 첫발을 내딛는 상황인 겁니다.
유기준 장관을 비롯해 김영석 차관의 최근 발언, 그리고 해수부 분위기를 보면 이제는 본연의 업무 복귀에 방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또 언제까지 세월호 책임론에 묻혀 숨죽이며 있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구난, 사고예방 시스템의 부재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요구가 여전한 점을 감안한다면 해수부의 최근 행보는 다소 우려스러운 게 사실 입니다. 설마 섣부른 출구전략을 구사하는 건 아니겠지요. 유기준 장관은 브리핑 말미에 “앞으로도 해수부의 모든 직원은 진상조사, 피해 배·보상, 선체인양 등의 후속조치가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고, 제 느낌이 기우였음을 증명해 주길 바랍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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