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성 논란' 초등생 동시집, 불편한 전량 폐기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잔혹성 논란' 초등생 동시집, 불편한 전량 폐기

입력
2015.05.06 21:03
0 0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쓴 시가 잔혹성 논란에 휘말렸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을 낸 출판사는 해당 도서를 전부 회수해 폐기하기로 했다.

문제의 시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2005년생 어린이의 동시집 ‘솔로 강아지’에 실린 ‘학원 가기 싫은 날’이다. 전문은 이렇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 가장 고통스럽게”

이 시를 두고 너무 잔혹하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가문비출판사는 5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사과문은 “일부 내용이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엔 그 허용 범위를 넘어섰고, 어린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항의와 질타를 받아 이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솔로 강아지’를 전량 회수한 후 남아 있는 도서와 함께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점의 독자 서평과 블로그 등에 나타난 반응은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는 비난과 “충격적이긴 하지만 솔직하고 뛰어난 시”라는 옹호가 엇갈리고 있다. 자극적인 삽화때문에 더 비난을 받고 있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 앉은 여자(아이?)가 입가에 피를 묻힌 채 한 손에 심장을 들고 빨아 먹는 모습을 만화풍으로 그렸다.

어린이문학과 그림책 전문가인 시인 이상희씨는 “재기발랄한 아이가 날것의 감정을 쓴 데 대해서는 별 의견이 없다. 하지만, 어른 내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아이의 노여움에 부끄러워해야 할 어른들이 그 부산물에 엽기적인 삽화까지 곁들여 그것도 책이라는 영속적인 매체에 담아 매매한 사실에 전율하며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여러 편이 실린 동시집에서 한 편을 문제 삼아 전량 폐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예컨대 표제작 ‘솔로 강아지’는 어린이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감성과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 엄마가 허락을 안 한다 //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우리 강아지 //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 외로움이 납작하다”(‘솔로 강아지’ 전문) 저자인 어린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3년 오빠와 함께 쓴 시집과 동화책을 내서 호평을 받았고, 지난해 한 어린이신문의 문예상 장원을 하기도 한 주인공이다. 이번 폐기 결정으로 어린 시인의 신작 시집은 시중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문제가 된 시에 대해 출판사는 “출판 과정에서 부적절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저자인 어린이와 부모가 꼭 넣기를 원했고, 시집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수록해도 괜찮다고 판단해 고민 끝에 수록했다”고 설명했다. 6일 오후 이 출판사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다운됐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