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 이끌고 와 서 있었다. /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 태연하였다. /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6일 간부 회의에서 직접 읊었다는 시 한편입니다. 시인 김종삼의 ‘장(掌)편 2’이라고 합니다. 김 총장은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이틀 후는 어버이날. 그 동안 업무 등을 핑계로 가족이나 부모님께 소홀히 한 일은 없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시를 읊은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검찰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 한가한 말로 들립니다.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당일 자신이 금품로비를 했다는 정권 실세 8명의 명단을 남긴 채 자살한 이후 검찰 일선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야권은 이를 특검으로 넘기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때문인지 김 총장은 다음과 같은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가슴이 찡하면서 한 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가난은 죄악도 아니고 사회적 차별 대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편견과 오해 무지와 이해관계 등으로 차별 받거나 무시되는 것이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만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소녀의 기개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데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을 검사의 기개와 소신을 갖고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로도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맥락을 감안하면 크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김 총장은 당초 경남기업 수사를 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리스트 부분을 떼어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이번 사건 처리를 일선의 소신과 기개에 맡기기 보다는 총장의 영향력 아래 직접적으로 두는 특단의 조치를 한 셈입니다.
검찰은 오는 8일 홍준표 경남지사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리스트에 등재된 8명 가운데 첫 피의자 소환이자, 공여자가 사망한 가운데 유일하게 전달자의 진술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 처리는 리스트에 등재된 8명의 혐의 입증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대로 검찰이 이와 관련한 전문증거(진술) 외의 결정적인 직접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별수사팀이 숨겨진 카드로 김 총장이 말한 검찰의 기개와 소신을 보여줄 수 있을지, 김 총장의 발언이 엄중한 시기에 뜬 구름 잡는 수사(修辭)로 남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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