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충무로 노장들이 모였다. 임권택 김수용 정진우 감독, 배우 김지미 등은 감회에 젖은 표정이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영화가 발견되고 복원돼 소개되는 자리였으니 만감이 교차할 만도 했다. 배우 이혜영은 아버지인 이만희(1931~1975) 감독을 대신해 참석했다.
이날 행사장에선 김 감독의 ‘만선’(1967)과 임 감독의 ‘전장과 여교사’(1965), 이 감독의 ‘잊을 수 없는 연인’(1966) 등의 주요 장면이 소개됐다. 흑백화면 속 배우들의 문어체 대사가 낯설었다. 이혜영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50년 안팎의 시간은 잔인하게도 전장의 비극과 비련의 사연조차 코미디로 만들었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이만희 감독 전작전을 열고 있다. 전작(全作)전이니 이 감독의 모든 작품을 상영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51편의 작품 중 ‘만추’ 등 유실된 영화들이 많아 26편만 영사기에 걸린다. 그래도 한국영화사에 굵은 획을 그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과 ‘마의 계단’(1964), ‘휴일’(1968), ‘삼포 가는 길’(1975), 얼마 전 복원된 ‘잊을 수 없는 연인’ 등을 볼 수 있다.
상영작 속 배우들 연기는 지금 관객들의 눈으로 보면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성우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마냥 여유롭게 볼 수는 없다. 영화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나 화면 속에 그려진 시대의 고민은 지금, 이곳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처럼 한반도의 분단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휴일’의 빈털터리 청년 허욱(신성일)처럼 2010년대의 청춘은 실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공사장을 떠도는 일용노동자 영달(백일섭)과 막 출소한 정씨(김진규) 등의 서글픈 방랑기(‘삼포 가는 길’)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감독은 ‘7인의 여포로’(1965)에서 인민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반공법에 걸려 투옥됐다. 이념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이 감독의 굴곡진 이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감독이 만든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 삶에 살아 숨쉬지만 그의 마지막 길은 쓸쓸했다. ‘삼포 가는 길’ 후반작업 중에 숨을 거둔 이 감독의 장례식은 충무로의 한 쓰레기 하치장에서 짧게 치러졌다. 옥외집회를 금지한 유신정권의 서슬 때문에 동료 영화인들은 울음을 삼키며 충무로의 재주꾼을 서둘러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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