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제조량 감소로 경영난
불리언 코인으로 돌파구 찾으려
발행권 가진 한은 상대 물밑작업
“금화를 만들게 해주세요.”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의 요즘 숙원사업은 ‘금화 제조’다. 화폐 제조시장이 갈수록 쪼그라들자 국제 통용어로 불리언코인(bullion coin)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공사 고위 관계자는 5일 “3년쯤 전부터 화폐 발행권을 지닌 한국은행을 상대로 금화 제조를 물밑 설득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공사는 예전에도 금화를 제작한 적이 있지만 올림픽 같은 국가적 행사를 홍보하는 용도의 기념주화였다. 행사 시기에 맞춰 일회성으로 발행되고 외형도 제각각인 기념주화와 달리, 불리언코인은 일반 동전 크기에 고유 문양과 액면가격이 새겨져 상시 발행된다. 미국, 캐나다, 중국,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인 불리언코인 발행국. 각국 주화는 문양에 따라 이글(독수리ㆍ미국), 메이플(단풍잎ㆍ캐나다) 같은 별칭이 붙는다.
공사는 불리언코인의 흥행을 자신한다. 금 투자 수요가 상당하다는 현실적 판단과, 우표 이후로 끊긴 수집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근거다. 주화 판매회사인 화동양행 관계자도 “2013년 오스트리아 불리언코인 ‘비엔나 필하모닉’(사진)을 수입 판매했는데 출시 첫 주에 6억원어치 이상 팔렸다”며 잠재된 금화 수요가 작지 않다고 진단한다.
공사가 불리언코인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주수입원인 화폐 제조량 감소에 따른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고 2009년 5만원 고액권까지 발행되면서, 공사 전체 매출에서 화폐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62.0%에서 2014년 28.4%로 크게 줄었다..
2012년부터 팔기 시작한 골드바가 연 700억~800억대 매출을 올리며 전체 매출의 20%를 책임지는 ‘효자상품’이 된 것도 공사가 금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공사 관계자는 “골드바보다 중량이 작고 다양해(캐나다 메이플의 경우 2.8~28g 5종) 소액으로도 탄력적인 ‘금테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공사는 특히 음성거래가 60~70%나 되는 우리나라 금 시장의 혼탁상을 개선하는 데도 불리언코인이 일조할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불리언코인은 법정통화에 속하는 만큼, 공사의 장밋빛 전망이 실현되려면 반드시 한은의 허가가 필요하다. 공사는 다양한 비공식 경로를 통해 발행 승인을 얻어내려 애쓰고 있지만, 시중 통화량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는 한은은 난공불락이다. 주무부서인 한은 발권국은 “어떠한 공식적 발행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설령 요청이 들어와도 허가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관계자는 “조폐공사가 금으로 수익사업을 하고 싶다면 주화가 아니라 (한은 승인이 필요없는)메달을 만들어 팔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다른 관계자도 “불리언코인은 부존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금을 유통하는 방식으로 적합한 제도”라며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공사는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공사 관계자는 “한은이 너무 보수적인 것 같다”며 “끝까지 설득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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