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오후 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특별사면제도 개선 관계기관회의를 열었다. 공휴일에 열려야 할 정도로 시급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의의 직접적 계기인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부터 생뚱맞다. 박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투명한 사면권 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주일간의 와병 이후 재개한 첫 공식일정에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특별사면제도의 개선을 주문했으면, 그만큼 긴박한 사유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 정부 들어 과거와 달리 특별사면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예가 없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난해 설 맞이 특별사면이 단행되긴 했으나 5,812명의 대상자에 정치인과 기업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부정부패 관련 정치인이나 개인적 이득을 앞세운 기업인의 사면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만큼은 박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켰다. 그 덕분에 이명박 정부 말기의 MB 측근과 정치인, 기업인의 특별사면이 부른 논란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자의적이고 무분별한 특별사면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사회적 논의는 완전히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의 특별사면 문제가 상당한 논란을 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공방의 소재일 뿐이어서 당시 특사의 정치도의적 책임 소재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몰라도 제도개선 요구는 자극한 바 없다. 또한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아닌 최도술 임동원 신건씨 등의 특사가 국민적 논란을 부른 결과 2008년 12월의 사면법 개정과 이듬해 3월의 시행규칙 개정으로 제도적 개선도 이미 나름대로 이뤄졌다.
물론 제도개선 이후에도 MB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특별사면이 사회적 논란을 불렀음을 이유로 추가적 제도 개선을 주장할 수는 있다. 다만 당시와 현재의 분명한 차이에서 보듯, 문제는 늘 제도의 성글고 촘촘함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에서 비롯했다. 사면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명시한 헌법을 고친다면 몰라도, 대통령의 의지를 뛰어넘을 어떤 제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희석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스럽게 한다. 그것이 오해라면, 시기적 미묘성에 비추어 오해의 소지를 피하는 것도 대통령이 가져야 할 정치적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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