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맞벌이에 혼자 밥 먹는 학생 등
금요일마다 100여명 찾아와 북적
상담사 만나고 또래들과 공놀이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경기 부천시 부천체육관 분수광장에 ‘밥차’가 등장한다. 1톤 탑차를 개조한 이 밥차가 보통의 밥차와 다른 점은 청소년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 또 메뉴판에는 가격이 써있지 않다. 올해 3월 부천시에서 네 번째로 문을 연 청소년 밥차 ‘꼽이의 심야식당’이다.
이 밥차의 손님은 인근 부천시 약대동과 중·상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부터 고교생까지의 청소년들이다. 꼽이의 심야식당 직원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밥차가 문을 연 지 두 달이 지나며 익숙해지자 이젠 밥차 간판이 불을 밝히기 전부터 청소년들이 식판을 들고 줄지어 기다린다.
청소년들은 밥만 먹는 게 아니다. 형·오빠뻘인 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사와 얘기를 나누고 공을 찬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상담 교육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한 독지가가 차량을 지원하면서 시작된 꼽이의 심야식당은 밥을 매개로 한 배움과 돌봄의 공간이라고 부천교육지원청은 설명했다. 부천교육청, 새롬가정지원센터, 약대동마을공동체, 덕유사회복지관, 노인자치연구소 은빛날개 등이 밥차 운영을 돕고 있다. ‘꼽이’는 약대동 주민들이 연출, 연기를 맡아 제작한 영화를 선보이는 마을축제 꼽사리영화제의 마스코트 이름이기도 하다. 부천교육청 관계자는 “이 밥차는 가출할 위기이거나 부적응으로 학교를 그만둘 위기에 놓인 아이들, 맞벌이 등으로 가정에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비롯해 지역의 모든 청소년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꼽이의 심야식당은 현재 하루 70~100여명이 방문하고 있고 여름이 되면 하루 150~200여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천에선 꼽이의 심야식당 외에도 가출 청소년,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 등을 위한 청소년 밥차가 부천역, 고강동, 도당동에서 운영 중이다. 밥차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처음에는 밥만 먹고 가지만 나중에는 먼저 다가와 속 얘기를 꺼내놓곤 한다”고 전했다.
꼽이의 심야식당 단골손님인 중학생 A군은 밥차를 통해 크게 바뀌었다. A군은 흔히 말하는 ‘4차원’으로 유별난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밥차를 처음 찾았을 때도 A군은 또래보다는 성인 자원봉사자들과 더 잘 어울렸다. 하지만 밥차를 찾는 횟수가 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한 자원봉사자는 “자원봉사자들과 가까워지고 설거지 등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또래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밥차는 지역 어르신들이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면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음식을 만들고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배식과 설거지를 맡는 등 일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사회복지사 등은 상담이나 문화 프로그램, 놀이 등을 책임진다. 교육지원청은 학교 내 따돌림, 부적응 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담임교사, 대안학교와의 연계도 지원한다.
오세향 새롬가정지원센터 대표는 “소통을 힘들어 하거나 조부모 손에서 자란 아이들, 집에 밥이 있지만 혼자 먹기 싫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을 마치고 찾아 온다”며 “대부분이 선생님이나 또래 친구들과 오고 있는데 이 아이들을 문제아로만 보는 일부의 시선은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꼽이의 심야식당은 앞으로 꼽이마을방송과 함께 하는 청소년 인터넷 라디오방송을 통해 청소년들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방송을 만들고 동아리, 소모임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오 대표는 “아이들이 핵가족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형, 오빠, 삼촌 등 관계에 목 말라 하더라”며 “우리 교육이 대학 입시에 매몰돼 체육, 예술 등을 등한시 하기 때문에 같이 기타 치고 공 차고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청소년들이 크게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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