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28세 여자입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한 취직자리를 찾지 못했고 뒤늦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죠. 대학에 다닐 때는 그래도 제법 연애를 잘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취직도 안되고, 시험 공부에 매진하다 보니 연애는 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어요. 이제 곧 서른인데 저는 돈도, 직업도, 인생을 함께할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네, 전형적인 삼포 세대인 셈이죠. 곽정은 씨는 행복한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이라면서요. 행복한 연애는커녕 연애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저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기는 한 걸까요?
A: 2001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시기였을 겁니다. 저는 약 30군데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고, 30번의 서류전형 탈락 메시지를 받아들어야만 했어요. 그저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열심히 땄고, 허튼 데다 시간을 쓰지도 않았는데 그것으로는 그 어떤 기업의 마음에도 들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무척 많이 맥빠지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사실상 이 세상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인가보다’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던 것을 기억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또 30번쯤 더 낙방을 하고 한 회사에 겨우 입사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 3년 반동안 저는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어요. 너무나 선택받고 싶었고, 따뜻한 관심이 고팠지만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취업 암흑기를 겨우 지나 보내고 나자, 그보다 훨씬 긴 연애 암흑기가 찾아왔던 셈이네요.
‘돈도, 직업도, 함께 할 사람도 없는 상태이므로 나는 완전 삼포 세대야’라고 자기 자신을 섣불리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특정한 현상에 이름붙이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구분해 표현하기 좋아하지만 우리는 그전에 지극히 개별적인 한 명의 인격체이자 영혼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일 뿐 ‘삼포클럽’의 멤버같은 것이 아니에요. 다만 당신의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취업 암흑기와 연애 암흑기가 완벽히 겹친 상태로 이 시간을 지나가고 있을 뿐인 거죠. 60군데에 낙방한 저의 경우야 ‘암흑기’라는 표현이 딱 맞을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적어도 여기저기 나를 사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그 표현조차 너무 과한 것일 수 있고, 오히려 ‘직업 준비기’와 ‘연애 보류기’정도라면 좀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데이트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비정규직이면 소개팅하기조차 껄끄럽다’고도 말하고요. 하지만 사람이 그저 알량한 돈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와 별로 큰 돈을 쓰지 않고도 마음이 충만한 데이트를 하는 때가 아닐까요? 돈이 많으면 누군가를 선택할 때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을 순 있겠고, 또 데이트를 할 때 훨씬 쾌적하고 화려한 조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온전히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입니다.
당신이 9급 공무원 시험에 빨리 합격한다면, 분명히 뭐라도 더 가진 남자를 빨리 만나는 데 그것이 꽤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결혼 시장을 둘러싼 세상 이치가 그러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형편이 나아지고 괜찮은 남자와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과업을 이뤄낸다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걸까요? 그 후에 혹여 불행해진다면 그것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직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연애도 못하는 거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전자오락의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처럼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인생의 긴 시간을 두고 찾아나가게 되는 커다란 주제이고 당신은 지금 그 과정 속에 있는 것 뿐이니까요.
어렵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가’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지 마시고,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죠. 취업은 연애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요. 당신이 원하는 일, 당신이 원하는 사랑, 그 두가지가 공유하는 공통의 지점에 바로 당신이 원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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