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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허당쟁이' 법의 알몸을 구경하자

입력
2015.05.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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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다툰다. 그리고 그 중 더 빈정 상한 사람이 더 이상 화해로 돌아올 수 없게끔 하는 말을 내뱉는다. “법대로 해! 법대로 하자고!!” 그러나 몇 달 후 법정에서 만난 그들은 알게 된다. 생각보다 법은 꽤나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왜 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냐고 버럭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이야기이다. 하지만 해야겠다. 세월호 사건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낯 아니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지만, 입법의 민낯 이른바 입법의 알몸까지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법률은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역사에 남을 사건이 터졌고, 온 언론이 하루종일 세월호 이야기만 했다. 공교롭게도 그 주는 유독 비가 자주 왔고, 온 세상에 슬픔이 깔려 있는 듯 했다. 다들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 해 천인공노할 선원들을 어떻게 해야 더 큰 벌을 줄 수 있을까를 가지고 논의했고, 당시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업무상과실치사상죄'나 '유기치사상죄'정도만 가능한데 그로 인한 처벌수위가 지은 죄에 비하여 가볍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다가 4월 19일이 될 무렵이었다. 검찰에서 이준석 선장 등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도주선박죄' 이른바 선박뺑소니죄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해법을 내놨다. 그리고 이 해석은 그 즉시 언론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이 죄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선박에도 뺑소니범이 있다는 것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이었다. 남해 즈음에 근무하고 있는 연수원 동기인 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주선박죄가 정말 적용될 것으로 해석하냐고. 법문을 천천히 읽어본 것이 맞냐”고 말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아뿔사! 안 되겠더라.

이 법은 피해자가 먼저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렀고 이를 알면서도 선원들이 도주해야지만 적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피해자가 먼저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만 살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간 경우는 오히려 도주선박에 해당하지 않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한 것인가. 간단했다. 특가법상의 도주차량 즉 도로 위의 뺑소니범 경우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상의 특징을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육지 위에서는 피해자가 다치지 않은 경우 운전자가 차를 버리고 도망을 가도 큰 일이 발생할 경우가 별로 없다.

피해자가 알아서 그 상황을 모면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 위에서는 다르다.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더라도 선원이 사고 난 선박을 버리고 도망가면 그 즉시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도로 위의 뺑소니 규정을 만연히 이를 베낀 입법자들은 물 위의 뺑소니 특징을 미처 예상하지 못 했고 따라서 결국 이준석 등에 대하여 1심은 살인죄도 도주선박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와 유기치사상죄 등만 인정을 했다. 물론 2심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도주선박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위 조항은 현재에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법이 모든 것을 공명정대하게 규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오산이다. 민사에 있어서도 형사에 있어서도 법은 제일 나중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말은 곧 웬만하면 서로서로 합의로 해결하는 게 우선이고, 그게 안 될 경우 법이 어슬렁 등장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뒤늦게 나타난 법이 촘촘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불신이 좀 덜할 텐데, 이거는 원 구멍투성이이거나 현 세태를 반영 못 하는 게 태반이다.

바로 그것이 필자가 본 온라인 지면을 통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공명정대하고 철두철미할 것 같은 법. 하지만 실은 구멍투성이 허당. 흡사 필자와도 같은 그 법의 알몸을 드러내서 더 나은 법을 함께 구축해가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이유다.

* 도주선박죄

제5조의12(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해사안전법」 제2조에 따른 선박의 교통으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수난구호법」 제18조제1항 단서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 처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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