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겨울왕국’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21세기 최고의 광대’로 손꼽히는 슬라바 폴루닌(65)의 ‘스노우 쇼’다. 1993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연극적 구성에 마임을 가미한 광대예술로 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수천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2001년 국내 첫 선을 보인 후 네 차례 내한 공연이 모두 매진된 이 공연이 2008년 이후 7년만에 내한한다.
2일 대구 지산동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미리 만난 ‘스노우쇼’는 제목대로 눈(雪)이 다양하게 변형돼 감동을 선사했다. 공연장에 입장하자마자 객석 구석구석 쌓인 눈이 눈길을 끌었다. 공연 시작부터 내린 눈은 공연 도중 비눗방울이나 커다란 공이 되어 객석을 떠돌다 종국에는 거대한 눈보라로 휘몰아친다.
한지처럼 얇은 종이를 잘라 만든 눈을 만지며 어린이 관객들이 들떠 환호를 보내는 사이, 새파란 무대 위로 노란색 포대자루 같은 옷을 걸친 키 작은 어릿광대가 살금살금 걸어 나온다. 초록색 외투를 입고, 긴 챙이 달린 모자를 쓴 키 큰 광대는 길쭉한 발로 노란 광대와 호흡을 맞춰 미끄러지듯 무대 위를 오간다.
무성영화 속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8명의 광대들은 아무런 대사 없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에피소드들을 펼친다. 힘겹게 끌고 나온 침대는 어느새 보트로 변해 바다를 항해하고, 무대는 바다였다가, 까만 밤하늘이었다가, 사무실로 변한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추억과 향수. 눈 덮인 러시아 고향과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만든 폴루닌은 “어린 시절의 꿈과 기대에 흠뻑 젖어보고 싶었다”고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1부와 2부의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다. 무대 구석에서 광대의 빗자루에 감겨나온 거미줄은 순식간에 객석으로 뻗어 나와 관객들의 손을 타고 1,110석의 극장을 뒤덮는다.
간이역에서 이별을 슬퍼하는 광대가 눈물짓자 천장에서는 종이 눈발이 날리고, 무대는 눈 쌓인 벌판으로 바뀐다. 눈부신 대형 조명이 켜지며 엄청난 눈보라가 무대에서 객석까지 휘몰아치고 광대는 눈보라를 뚫고 설원으로 사라진다. 눈보라의 전율이 끝나면 원색의 대형 애드벌룬과 수십 개의 커다란 풍선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공연장은 관객과 배우가 뒤엉켜 노는 놀이터가 된다.
‘스노우쇼’ 공연은 부산 영화의전당(5∼10일)과 역삼동 LG아트센터(14~30일)로 이어진다. 약 3주 간의 서울 공연에 사용될 눈의 양은 1톤 트럭 한대에 가득 찰 정도다. (02)2005-0114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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