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제정세의 요동 속에서 대한민국호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어제 마무리 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번 방미 여정으로 미일 신밀월 시대가 활짝 열렸다. 미일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해져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과거사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대립하던 중국과 일본은 잇단 정상 만남을 통해 갈등은 관리하면서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는 중이다. 과거사 전쟁에 발목 잡힌 한국만 고립무원의 상태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걱정과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팀은 별로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가 사활이 걸린 외교 중심 무대는 외면하고 변두리 순방외교에 주력한다. 외교 사령탑인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한 점 걱정할 필요가 없다”(1일 외교안보 당정협의회 답변)고 그다지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패권 다툼이 가열되고 있는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처지를 미ㆍ중 양측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축복이라고 해석했던 윤 장관이다. 그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막강한 국력과 외교적 자산을 가진 중국, 일본과 우리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존립을 뒷받침할 외교 비전을 세우고 전략을 구축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꿈(中國夢)을 앞세우고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육ㆍ해상 신 실크로드 대전략을 추구 중이다. 일본의 아베 내각은 미국의 대중 견제전략인 아시아 회귀ㆍ재균형 정책에 기대어 전쟁 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를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는 과연 그와 비견할 만한 실효성 있는 비전과 전략이 없다.
물론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구상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아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선반 위에서 잠자고 있는 구상을 외교 비전이요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논란과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과정에서도 전략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자화자찬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에서부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를 마냥 과거사의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도록 놔두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박 대통령 자신부터 안이한 생각을 털어내고 외교의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고착된 현상을 돌파할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런 외교안보 진영은 당연히 새롭게 짜야 한다. 머뭇거리며 허송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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