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영화평론가가 만나 영화를 말한다. 따분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들만하다. 대상이 된 25편의 영화 대부분도 대중의 귀에 익숙지 않다. ‘열차의 도착’과 ‘전함 포템킨’ ‘메트로폴리스’ ‘독일영년’ ‘소매치기’ 등 영화 역사에 큰 자국을 남긴 영화들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 ‘모던 타임스’ ‘싸이코’가 그나마 친숙한 작품들이라고 할까. 독자를 주저하게 만들 요소는 또 있다. 880쪽 분량이 주는 심리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서문을 제외하면 영화 한편 당 33쪽 가량씩 배정된 셈이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려운 철학용어와 영화용어를 늘어놓으며 고전들을 해부하지 않는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철학자의 시선과 평론가의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했다. 저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지식과 식견까지 녹아있다.
구성부터 친절하다. 각 영화를 개요로 먼저 소개하고 ‘작가에 대하여’ 코너를 이어 붙여 해당 영화 감독의 정보를 제공한다. 두 저자가 영화팬들 앞에서 수다 떨듯 밝혔던 영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시네토크’에서 다룬다. 이어서 ‘철학자의 눈’과 ‘비평가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의 글이 실려있다. 왕성한 저작과 강연 활동으로 대중의 마음을 산 강신주와,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온 영화평론가 이상용의 만남답다.
두 사람의 시선은 일치하면서도 엇갈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우연히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 소녀 치히로가 센으로 이름이 바뀌며 겪는 일에 두 사람은 주목한다. 이름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탐독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센이 일하는 목욕탕에서 자본주의를 읽는다. 대가의 교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로 영화를 해석한다. 이상용은 좀 다르다. 이름에 더 집중하고 단어의 쓰임새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분석한다. 일본어 존칭 ‘상’이 주는 어감과 친밀감이 배인 ‘짱’ 사이의 거리감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살핀다.
고전을 분석 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용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영화는 동시대 영화가 아니다.” 오늘을 읽기 위해선 고전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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