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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성완종 리스트와 민주주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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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성완종 리스트와 민주주의 위기

입력
2015.05.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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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억만장자는 한 대의 비행기와 두 대의 요트, 네 채의 집과 5명의 정치인을 소유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자본가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정부와 의회의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한다는 의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대럴 M. 웨스트 부소장은 지난해 발간한 억만장자들: 최상류층의 초상(Billionaires: Reflections on the Upper Crust)에서 거부들의 지배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미국 정치의 금권정치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웨스트 부소장은 이 책에서 “자산 10억 달러 이상인 전 세계 1,645명의 억만장자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각국의 정치와 정책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미국의 거부들이 대통령이나 의원들에게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례들을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거부들은 정치자금을 통해 정ㆍ관계와 깊숙한 인연을 맺은 뒤 각종 입법 및 정책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직접 관직과 정계로 진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이 남긴 리스트에는 현 정부의 실세라고 할만한 정ㆍ관계 인사 8명이 등장한다. 국무총리와 전ㆍ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지자체장, 국회의원 등으로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한 인물들이다. 미국의 우스갯소리를 빗대면 성 전 회장은 적어도 8명의 정치인을 소유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리며 정책 결정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치인들을 통해 금융권을 주물렀고, 은행들은 부실한 경남기업에 풍부한 자금을 대줬다. 금융감독원은 아예 ‘건설사 워크아웃 MOU 가이드라인’을 고쳐 경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고 워크아웃 상태에 있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기업이 세 번씩이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성 전 회장은 2012년에는 아예 본인이 국회에 직접 진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은행과 금융당국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에서 자신의 기업을 챙겼다. 그의 국회의원 시절 경남기업에 대한 여신은 20%이상 급증했다. 특히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의 지원은 파격적이었다. 대주주(성 전 회장)의 감자 없이 채권단만 출자전환을 하는, 상식을 뛰어넘는 결정까지 나왔다. 채권단의 결정에 금융감독원이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원 한 명의 힘이 이 정도인지 놀라울 뿐이다. 금권정치의 한국판 대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이처럼 금권정치는 국민의 이익과 전혀 상관없이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은 기업인이나 자본가, 혹은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구조를 갖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필립 코틀러 석좌교수는 저서 다른 자본주의(Confronting Capitalism)에서 “금권정치가들은 1인1표의 민주주의가 갖는 이상적인 목표를 기만한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재산을 지키고 또 늘리기 위해 세율을 인상하려는 모든 시도를 중단시킨다”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슈퍼 리치가 선거 당선자와 의회에서 통과되는 법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이나 일본, 한국 등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과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을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문제는 때때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로 인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권정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자금을 동원한 로비를 통해 기업이나 특정집단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1인1표제가 무의미해진다.

이익집단과 결탁한 정치인이나 관료는 사익추구를 위해 국민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도록 하고 국민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많이 준 쪽을 위해 정책이나 세금을 사용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자본을 많이 가진 집단, 자금동원능력이 큰 집단들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지금처럼 일개 기업인에게 정치권력의 핵심부가 정치자금으로‘포획’되어있다면 정치체제의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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