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이 드러났다. 자빠진 진보를 보수가 밟는다. 늘 고깝던 잘난 척이다. 불결이 과장된다. 같은 편은 민망하다. 과신이 부른 사달이다. 대개 법은 선의를 모른다. 교육감이 안이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학자이자 민주화 투사다. 그런 그가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가 1심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자 독설을 퍼부었다. 사법 민주주의를 한발 진전시켰다고 평가받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향해서다. 그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법률을 잘 모르시는 비전문가 배심원들이 굉장히 미시적인 법률 판단을 하셨다”고 했다. (…) 궤변을 듣고 보니 그가 추구해온 민주화라는 건 교육감 자리를 위한 ‘포장지’였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 그 자리에 적합한 재능을 갖췄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부모가 누구인지 얼굴은 잘났는지 혹은 화려한 스펙을 갖췄는지 따지는 풍조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가리지 않고 나라 전반을 휩쓸고 있다. 덕분에 화려한 말재주나 독설 퍼붓기 실력만으로 전문가로 행세하거나 한발 나아가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다. 대중을 속이는 데 성공하고 그 이후 법의 심판이나 매서운 검증의 그물에 걸려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들은 실력도 없이 권력의 단물만 빨아먹을 게 분명하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어떤 허울과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세상을 속이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가 얼마나 많이 나올까 하는 점이다. 그 껍데기를 걷어내지 않고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조희연의 포장지’를 걷어내야 산다(동아일보 ‘광화문에서’ㆍ이동영 사회부 차장) ☞ 전문 보기
“공소 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조 교육감 측의 주장에는 100% 공감한다. 13명이나 되는 진보교육감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현 정부의 태도를 고려하면 충분히 의심을 품을 수 있다. 또 선거 당시 논란이 됐던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에 대한 의혹 제기가 교육감 직을 당선 무효 시킬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헷갈린다. 아울러 조 교육감의 억울함이 클 것이라는 데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조 교육감의 억울함과 그의 행위는 별개다. 공소 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한 것은 검찰이 그만큼 충분히 조사한 뒤 신중하게 기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선거운동 기간 표현ㆍ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대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흑색선전과 보수 세력의 단골 메뉴인 ‘색깔론’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조 교육감의 변호인은 1심 재판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은 평생 학자로 지내며 사회적 양식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이 자기 명예를 걸고 허위사실을 공표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양심, 도덕성, 정의감, 개혁 의지를 과신해 범죄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무죄 입증에 소홀했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 성경 마태복음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구절이 있다. 전ㆍ현직 진보 교육감들의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알기에 그들의 ‘뱀과 같은 지혜’가 더욱 아쉽다.”
-‘뱀의 지혜’가 필요한 진보 교육감(4월 28일자 한국일보 ‘36.5˚’ㆍ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 전문 보기
도둑으로 몰려 도덕을 뺏겼다. 별 수 없는 좌파다. 집권은 독 든 성배다. 권력은 부패한다.
“‘성완종 메모’를 들여다볼수록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 그 56자에는 많은‘다잉메시지(죽기 직전 남기는 단서)’가 숨겨져 있다. (…) 메모 앞 부분에 허태열, 홍문종, 유정복을 차례로 열거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로 보인다. (…) 메모는 금품을 제공한 수많은 정ㆍ관계 인사를 놓고 추린 요약본일 가능성이 많다. 별도의 복기 자료의 존재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더한 의문이 생긴다. 검찰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 메모 쪼가리조차 없는 사면로비 수사를 할 지다. ‘정치 검찰’을 자인해 온 저간의 행태로 보면 가이드라인을 따를 가능성이 짙다. 리스트 수사는 이완구와 홍준표로 끝내고 사면 수사로 저울추를 옮길 것이다. 하지만 실체가 밝혀질 리 없고 여야간 특검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흐지부지되리라는 건 안 봐도 뻔하다.”
-성완종 메모 다시 보기(한국일보 ‘지평선’ㆍ이충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성완종 사태가 폭로한 한국 사회의 문제는 여럿이다. 고질적인 정경 유착과 금권정치, 만성화된 부정부패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수십년간 무차별적 로비 대상으로 삼은 여야 정치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된 공적 권력을 철저히 사유화(私有化)했다는 사실이다.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분야 등의 권력 엘리트가 강력한 부패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위해 공적 자산을 약탈하는 것이 도둑정치의 본질이다. (…) 수평적 권력 교체 과정에서 여야 모두 그의 로비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 권력의 향배였기 때문이다. 메모에 적시된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는 물론이려니와 성완종이 참여정부에서 두 번이나 특별사면 받은 걸 문제 삼는 것도 단순한 ‘물 타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 성완종 메모에는 도둑정치의 줄을 타고 하늘 높이 비상하다가 파멸의 나락으로 추락한 자(者)의 르상티망(원한)과 사회적 고발이 함께 담겨 있다. 그것이 한국적 도둑정치의 뇌관을 건드려 폭발 직전에 이른 지금의 상황은 역사의 우연임과 동시에 필연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도둑정치는 단연코 한국 정치 최대의 암(癌) 덩어리다. 도둑정치가 횡행하는 곳에 좋은 나라의 꿈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둑정치’(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 전문 보기
시간ㆍ기억을 탈각한 공간은 어떤 정서도 환기하지 않는다. 깊이라곤 전혀 없는 박빙 영화.
“‘어벤져스’가 그렇게 대단한 영화인가? 1편 볼 때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만큼 푹 잤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 극장을 찾았을 때는 커피를 마셔가며 졸지 않고 봤다. 놀라울 만큼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였다. (…) 영화의 상당량을 한국에서 찍은 것은 분명 눈요깃거리였다. (…) 그러나 외국인들이 볼 때 한국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다. 청담대교의 복잡한 진출입 램프는 서울 사람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 할리우드가 원했던 것은 ‘도쿄나 홍콩이 아닌 아시아의 어떤 도시’였던 셈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어벤져스’ 한국 촬영의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가 2조원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계산한 결과인지 궁금하다. (…) 영화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문화부 기자의 의무감 같은 것 때문에 본 영화이긴 해도 ‘어벤져스’의 캐릭터나 스토리는 심하게 너절하다. 1970~80년대 식으로 말하면 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와 원더우먼이 총출동해서 나쁜 놈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 ‘어벤져스’는 못 하는 게 없는 캐릭터들끼리 밀고 당기다가 결국은 우리 편이 이기는, ‘그럴 줄 알았어’류의 영화다. (…) 어떤 영화를 택하는 데는 단지 두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이유도 있다. (…) 그 이상 기대하기 힘든 영화이고, 그래서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왜 이 정도 영화가 전국 극장의 80%를 차지한 채 한국 영화사의 흥행 기록을 죄다 깨 나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이것이 정말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인가, 아니면 한국 문화 자본의 수준인가.”
-영화 ‘어벤져스’가 뭐길래(조선일보 ‘한현우의 팝 컬처’ㆍ문화부 차장) ☞ 전문 보기
“영화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한국에서 이미 작년부터 화제가 되었다. ‘어벤져스2’ 일부가 한국에서 촬영된 덕분이다. 반포 세빛둥둥섬, 문래동 철강대로, 마포대교, 상암동 월드컵대로 등이 영화 촬영지로 예고되었다. (…) 한국 촬영에 대한 기대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 제고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익의 창출이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등장하는 한국은 꼭 한국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은 그저 울트론과 어벤져스팀이 싸우는 무대에 불과하다. (…) 그곳이 서울, 한국임이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이 영화에 특별한 정서적 환기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 ‘어벤져스2’에 그려진 대한민국 서울은 ‘우리’만 알아보는 서울에 가깝다. 가족을 길에서 우연히 만날 때 드는 생경함처럼 그렇게 어벤져스 속의 한국은 낯익어서 더 낯설다. (…) 영화 속에 그려진 서울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가보고 싶어지는 곳은 아니다. (…) 사람들은 어떤 정서를 찾기 위해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지만 늘 가보고 싶은 무진처럼, 문제는 장소 자체가 아니라 공간이 주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2015년 어벤져스 서울(4월 27일자 경향신문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ㆍ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