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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50년… '無'를 붙들고 씨름한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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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50년… '無'를 붙들고 씨름한 시간이었죠

입력
2015.04.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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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집·산문집 동시 출간

"시는 언어보다 자연에 가까워"

일생 동안 감탄하는 시간만 계산한다면 얼마가 될까. 누군가는 몇 분, 누군가는 며칠. 이를 기준 삼아 전 인류를 한 줄로 세운다면 맨 앞에 아마 정현종 시인이 서 있을 것이다.

정 시인은 ‘감탄자’다. 젊은 시절엔 무용에, 요즘엔 음악에, 그리고 자연엔 항상. 매혹당하고 감탄하고 경이로워하며 춤추듯이 지나온 세월이 어느덧 시력(詩歷) 50년이 됐다. 최근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와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문학과지성사)를 동시에 펴낸 시인을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앞마당에서 만났다.

통산 열 번째 시집인 ‘그림자에 불타다’에는 유독 기리는 시가 많다. ‘장엄 희생’에서는 천안함 사태 때 숨진 한주호 준위를 기리고, ‘찬미 나윤선’에서는 재즈가수 나윤선의 음악적 재능과 삶의 자세를 찬미한다. 사람, 음악, 여행, 연애…. 삶을 고양시키는 모든 것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 시인이 그 중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은 자연이다. 나무와 돌, 새와 꽃을 향해 지치지 않고 쏟아내는 경탄에 대해 시인은 “뛰어난 시는 언어보다는 자연물에 가깝다”고 말한다.

“어떤 글에선가 자연을 체험한 내 손바닥을 촉각의 지층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 지층에는 생물이라든가 열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만져보고 손에 쥐어본 생명체들의 감각이 내 몸에 쌓여 끊임없이 시의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자연은 인간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수준의 부차적 기능물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이 빚어낸 조잡한 인공물 위에 있으며, 어찌 해도 인공물을 벗어날 수 없는 시 역시 자연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바닥에 각인된/한없이 기분 좋은 새 발자국들아,/(세상은 기분이 한없이 좋은 일이 드문 데라는 걸 너희도 알거니와)/손바닥이 느껴/온몸을 흐르면서/깊어져/내 몸을 감각의 보배로 만들면서/법열 속에 있게 하는 새 발자국들아,/왜 그런지 말을 하마,”(‘허공의 속알을 손에 쥐다’ 중)

자연에 대한 시인의 독보적 감수성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도취”라고 해석하는 시각을 낳기도 했다. 시인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두 발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연이 주는 건 요즘 자주 쓰는 말인 ‘힐링’과는 달라요. 매스컴에서 되풀이하는 단어들 아주 싫어 죽겠습니다.(웃음) 인간은 평생 중력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땅에 뿌리 박힌 나무 같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재난과 전쟁, 정치상황 속에서 무신경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의 하중을 벗어나 솟아오를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한데, 저는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정신의 탄력을 회복시켜 우리를 중압으로부터 튀어 오르게 만들죠.”

정현종의 시에는 ‘튀어 올라 고양된 정신’ 외에 또 하나의 주요한 단어인 ‘그림자’가 있다. 제목에도 사용된 그림자를 시에 자주 넣게 된 것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는 깊은 밤 방구석에서 몸부림치는 장수하늘소를 놓아주기 위해 민박집 바깥으로 나왔다. 민박집 앞에 켜진 밝은 불빛은 집 뒤 산을 깎아 만든 흙벽에 시인의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었고, 자신의 산 몸이 흙 속에 박혀 있는 것을 본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그건 내 화석이었어요.”

그때부터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 분명치 않은 것, 무상한 것, 헛것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의 시 속에서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의 미지를 메우는 결정적인 단어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넘어가는/그 사이에/협곡이 있고/산맥이 있다./이 순간에서/저 순간으로/넘어가는/그 사이에/그림자들,/무거워, 한숨과도 같고/가벼워, 웃음과도 같은/그림자들./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우는/그림자들.” (‘그 사이에’)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 중 분명한 건 없어요. 욕망, 의지, 지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어른거릴 뿐이죠. 뚜렷하지 않은 것들을 통과하는 게 우리 인생인 것 같아요. 50년의 시 쓰기도 ‘무(無)’를 붙들고 씨름한 세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거리는 것은 불사(不死)”한다는 말을 꺼내놓고 시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언제까지 시를 쓸 생각이냐는 질문은 접어 두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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