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그레이 사건 공개 요구
사흘째 밤 늦도록 경찰과 대치
한인 상점 피해 30여 곳으로 늘어
힐러리 "균형 잃은 사법제도 정비를"
공화당 잠룡들 "법·가정 확립" 강조
미국 볼티모어 사태의 여파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사태 사흘째인 29일에도 볼티모어 중심가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뉴욕과 시카고, 보스턴 등에서는 동조 시위가 발생했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도 오후부터 시위대가 시내로 모여들더니, 밤 늦도록 경찰과 대치했다. 오전에는 경찰과 주 방위군 병력이 시내를 순찰하는 가운데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고, 회사들도 업무를 재개하는 등 정상을 되찾는 듯 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기차역에 모인 수천명의 시위대가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라고 쓰인 팻말 등을 들고 시청을 향해 행진했다. 시위대는 특히 프레디 그레이 죽음에 대한 경찰의 조사결과 비공개 방침에 반발하며 사건 전모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폭동으로 이어진 27일과는 달리, 시위대는 흑인과 백인 청년들이 함께 팔을 걸고 ‘정의 없이 평화 없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볼티모어 시당국은 지금까지 빌딩 30곳이 약탈 또는 방화 됐고 25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현지 한인상인들의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메릴랜드 식료품연합회에 따르면 전날 22곳으로 집계됐던 피해 업소가 30여 곳으로 늘어났다. 또 한인 3~4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은 폭도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병으로 맞아 크게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사흘째 시위가 이어지면서 이날 볼티모어 오리올 파크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로야구(MLB) 경기는 안전을 우려해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미국 다른 지역에서도 동조 시위가 이어졌다.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사법정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보스턴에서도 소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시카고에서는 28일 밤 400여명 시민이 모여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지난해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 총에 맞아 숨지면서 소요가 발생했던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는 28일에 이어 29일에도 시위와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등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주요 대선 주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뉴욕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경찰 과잉 대응으로 비무장 흑인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역들을 열거하면서 “어머니, 할머니로서뿐만 아니라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이들 젊은이와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애도했다. 그는 또 “우리 사법시스템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미국의 미래 비전을 갉아먹고 있다”면서 “균형을 잃은 사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화당 잠룡들은 인종차별과 경찰 대응 문제보다는 법질서와 가정 확립에 무게를 실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푸에르토리코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나 “법 규정과 집행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랜드 폴 상원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가족 구조의 붕괴, 아버지의 부재, 사회적 도덕의 부족이지 인종적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볼티모어를 조만간 직접 방문할 생각은 없음을 시사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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