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탔다. 토요일 오후, 경부선 KTX 역방향. 차창 밖으로 방금 지난 풍경이 빠르게 줌 아웃되어 사라지는 걸 오래 지켜보았다. 그렇게 창 밖 정황이 뒤집어지는 걸 나름 즐기는 편(?)이라 기차를 타게 되면 부러 역방향을 선택할 때가 있다. 풍경과 속도를 역회전시키고 싶어하는 심리적 충동이 생겨서일 터인데, 특별한 감정 상태와는 크게 상관없다. 뭔가에 대해 별다른 거리감을 두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순방향이든 역방향이든 도착지점과 소요시간에 물리적 차이는 없다. 역방향은 단지, 불가피하게 조장된 착시효과에 불과할 거다. 지나간 걸 지켜보고 있다는, 통상적이지 않은 물리적 변이 속에서 평시와는 조금 다른 자의식이 생긴다. 밉던 부분이 갑자기 예뻐 보이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저편’에 있는 다른 사람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길게 페이드아웃되는 레일을 따라 최근 며칠, 나아가 지나간 몇 년의 행적 등이 아스라이 인서트된다. 그때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야 말았을까 등등. 물론 대답은 없다. 밖으로 던졌던 시선을 끌어당겨 앞 좌석을 본다. 아빠 품에 안긴 아기가 내 쪽을 뒤돌아본다. 왠지 낯익다. 돌이 갓 지났을 무렵, 내가 저렇게 생겼었을까. 귀엽기도 가련하기도 한데, 지나친 감상일 것이다. 기차는 계속 달린다. 뒤를 앞으로 계속 당기며, 끝끝내 앞으로 앞으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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