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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명사' 아빠 '동사' 아빠

입력
2015.04.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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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부탁해’란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철없고 가정에 소홀한 아빠를 고발(?)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바쁜 연예인 아빠들이 성장한 딸들과 모처럼 함께 시간 보내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가 있는 반면에 딸이 자라는 동안 제대로 대화도 못했고 친하게 지낼 기회도 없었던 아빠들은 모처럼 함께인 상황이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실제로 통계를 내 보면 후자 쪽 아빠들이 많을 것이다. 출연자 중 한 명이 어렸을 때 아빠와 해 보고 싶었던 일을 도화지 가득 적어 아빠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학생활을 하느라 미국에 있었다. 가족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퇴근 이후나 주말에 아빠와 아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음료를 한 잔씩 놓고 어떤 주제인지 몰라도 진지한 대화를 하는 장면이 가끔 눈에 띄었다. 아이는 아빠와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기도 했고 아빠와 견해가 다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곤 했다. 아이와 대등하게 대화하는 아빠의 모습도 부러웠고, 아이들의 분명한 의사 표현도 좋아 보였다. 미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대화나 발표 때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런 가정교육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귀국해서 아이가 좀 자라고 난 뒤 미국 기억을 떠올려 대화를 통한 자녀교육을 시도했다. 전공인 경제학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우선 첫째에게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비용의 반을 본인 용돈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둘째에게는 심부름과 책 읽기 등을 하면 반드시 보상해 줄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운 것이 아니라 어른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한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면서 대화와 교육은 지속되지 못했다. 바쁘다는 게 핑계였다.

한국의 가족 형태는 짧은 시간에 전통적인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했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면 가족끼리 더 친밀해지고 대화가 풍성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입시공부에 지친 아이들과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부모세대 사이에서 대화는 사치라는 우울한 분석도 있다. 일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부모와 아이들의 심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밥 먹어라”“공부해라” “시험 잘 봤니”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자녀와 나누는 대화의 전부라는 우스개 소리가 현실이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주인공이 6년간 키웠던 아이가 병원 신생아실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고민을 다뤘다. 그 과정에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닌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아이가 뒤바뀐 아버지들끼리 만나 대화하는 대목이다. 일류기업에 다니는 아버지가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야겠다며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얘기한다. 그러자 가난한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라고.

우리 모두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역시 자식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과거 ‘아버지=어른’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던 때에는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권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날 때 저절로 부여되는 지위가 아니다. 끊임 없이 노력하며 만들어가야 하는 이름이다. ‘아버지’는 명사(father)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동사(being father)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성년의 날이 있는 5월이다. 부모님께,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은 대화의 물꼬를 터보는 능동적인 부모이자 아들 딸이 돼보면 어떨까.

박형수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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