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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세월호의 대통령, 성완종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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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세월호의 대통령, 성완종의 대통령

입력
2015.04.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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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탐욕과 무능이 부른 두 참사

정권 책임 회피와 물타기도 똑같아

박 대통령 국민들 트라우마 치유해야

지난 19일, 페루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라마 시내 인류고고학 역사박물관을 방문해 고대 페루의 유물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9일, 페루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라마 시내 인류고고학 역사박물관을 방문해 고대 페루의 유물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성완종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세월호 참사에서 접했던 기시감이 느껴진다. 사건 발생 원인이나 수습 과정, 대통령의 행태 등에서 유사점이 드러난다. 국가와 생명, 권력과 돈, 정치의 존재가치 등에 대한 의문을 던진 국가적 위기 상황이란 점도 공통된 특성이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은 공직자들의 탐욕이다. 공적 기관과 업체의 유착이 관리감독 소홀로 이어졌다. 개인의 욕심을 챙기느라 공복으로서의 책임감은 뒷전이었다. 성완종 사태에 연루된 정권 실세들에게도 공적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도층이 갖춰야 할 도덕성이나 품위 따위는 애초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다.

큰 일이 터지면 빠져나갈 궁리부터 하는 게 공직자들의 생리다. 세월호 구조 실패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해경 등 정부 기관은 뻔한 거짓말을 했다. 수백 명이 생죽음을 당했는데도 그들은 자기 살길만 찾았다. 성완종 파문에서도 똑 같은 장면이 재연됐다. 메모에 적힌 8명은 한결같이 “성완종을 잘 모른다”고 발뺌했다. 수시로 밥 먹고 수십, 수백 차례 전화통화한 내역이 나오고서야 “알기는 아는데”라며 반 뼘만큼만 시인했다. 거짓말, 은폐, 조작, 회유, 축소 본능이 공직자들의 DNA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궁지에 몰린 정권을 구하기 위한 행태도 판에 박은 듯하다. 세월호 수사에서 검찰은 유병언을 ‘돼지머리’로 삼아 정권에 쏠린 비판을 돌리는 데 일조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는 경제 죽이기와 동일시됐고, 유가족들은 자식을 볼모로 떼돈을 벌려는 무리로 폄하됐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물타기 하려는 정권의 노력은 눈물겹다. 난데없는 특별사면논란을 들고나와 순식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법무부 장관은 정치권 전반으로의 수사 확대를 노골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더 두드러진 공통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다. 이 두 개의 국가적 재난에서 대통령의 존재는 미미했다. 세월호 1년 동안 대통령 역할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여론에 못 이겨 눈물 한 방울 떨군 것 외에는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한 번만 만나달라는 유가족들의 간절한 요구를 매정하게 뿌리쳤다. 1주기 되는 날에는 형식적으로 팽목항을 잠시 들렀다 해외로 떠났다.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날 박 대통령은 “철저히 수사하라”는 의례적인 말만 대변인을 시켜 내보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 그룹이 두루 비리에 연루된 것은 역대 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소용돌이치는데도 한 마디 사과도 없다. 이들이 받은 돈의 용처가 자신의 대선자금과 경선자금인데도 말이다.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정치개혁’’사회개혁’을 내세우며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릴 생각만 하고 있다. 대통령은 빠지고 여야 전체를 뭉뚱그려 구태로 몰아붙이자는 게 정치개혁이고, 사회개혁은 국민들이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윽박지르자는 의도가 아니던가. 청와대 앞에 ‘천막당사’를 쳐도 시원찮은 판국에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치부하니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연이어 터지는 국가 위기 사태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무능하고 탐욕스런 지도층에 나라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대통령이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이러다 대한민국이 침몰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국민이 자신의 생업보다 대통령과 정부와 국가를 더 걱정하는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비정상적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책임이 있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 과로로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국내 상황은 링거만으로는 안 되는 빈사상태에 놓여있다. 박 대통령은 이 난국을 어떻게 수습할 지 답해야 한다.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해서라도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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