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클럽서 손글씨로 접객하다 자서전 베스트셀러 올라 유명세
일본에서 ‘필담(筆談) 호스티스’로 유명한 사이토 리에(齊藤里惠ㆍ31)가 구의원이 됐다.
사이토는 26일 치러진 전국지방선거 도쿄도 기타구(北區)의원 선거(의원정수 40명)에서 6,630표를 획득해 후보 50명 중 상위권으로 당선됐다. 27일 오전 2시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기분”이라고 ‘필담 보드’에 쓰자 지지자들의 함성이 터졌다. TV로 생중계된 개표방송 내내 기타구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기고 있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청각장애인인 그의 반응은 한 템포씩 느릴 수밖에 없었다. 당선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자 눈물이 흘렀다. 만세삼창을 한 뒤 달마인형에 눈동자를 그려 넣을 땐 책임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가두연설이 불가능한 사이토는 유권자를 한 명씩 찾아 다니며 메시지가 담긴 명함을 나눠줬다. 그러나 상점가에서 필담보드를 들고 글자로 소통하자 선거법상 ‘문서 그림 게시 금지’조항에 해당했다. 결국 자원봉사자와 함께 다니며 더듬더듬 직접 말로 포부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들리지 않는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가가 되겠다”는 메시지는 의외로 먹혔다. 알아듣기 힘든 발성이지만 역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장애인의 목소리를 구정에 실현하겠다”고 반복했다.
출생 후 22개월 만에 청력을 잃은 그는 사춘기를 거치며 방황했다. 대표적인 불량학생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호스티스 일을 하기 시작했고, 손글씨로 접객을 하는 필담 호스티스로 이름이 알려졌다. 도쿄 긴자의 클럽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스타가 된 것이다. 2009년 펴낸 자서전 ‘필담 호스티스’까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드라마 소재가 되기도 했다.
4세 딸을 둔 미혼모로 최근엔 강사와 집필활동에 전념해왔다. 그는 당선확정 후 “청각장애인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고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지역정치를 하겠다”고 필담보드에 썼다. 전례가 없는 청각장애인 당선에 북구의회는 어떻게 의정활동을 보조할지 고민 중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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